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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이전투구(2)조선일보 대해부 12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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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2.2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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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조선민중의 공기(公器)’

1935년 7월 6일자 사설(「사옥 낙성일의 서원[誓願]」)

본사의 신축 사옥의 낙성을 축하하는 오늘에 있어서 우리는 만천하 독자 앞에서 역사적으로 본사의 정신이요, 또한 끊임없이 실행하여 오던 다섯 가지 서원을 새로이 재인식하려 합니다. 조선일보는 조선의 공기(公器)요, 조선민중의 공기(公器)니 조선민중의 하고자 하는 바와 하고자 아니하는 바를 가장 힘 있고, 가장 분명하게 표현함으로써 첫 임무를 삼아왔습니다. (…) 본보는 이 시대, 이 민중의 언론기관으로서의 진정한 임무를 파악하고, 실현함으로 본보의 민족봉사의 제1임무를 실행하기를 서원합니다.
우리는 사회의 정상한 발달은 사회정의의 확립에 있다고 믿습니다. (…) 본보는 이로부터 더욱더욱 선(善)이어든 창(彰)하고 악이어든 최(摧)하여 사회의 풍기(風紀)와 인심의 정화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아낌도 없고, 돌아봄도 없고, 머뭇거림도 없는 정언보족(正言報族)의 제 2임무를 수행할 것을 서원합니다.
셋째로 본보는 지공지정(至公至正)하여 추호의 사(私)도 없는 전통적 정신을 더욱 발휘하여 부귀도 음(淫)치 못하고, 위무(威武)도 굴(屈)치 못하고, 비록 서슬 퍼런 칼(霜刃)을 밟을지언정 오직 공(公)이요, 오직 정(正)인 보도와 논평으로 용왕매진할 것을 서원합니다. (…)
(…) 본보는 문화운동을 위하여 성(誠)을 탄(殫)하고 역(力)을 갈(竭)하기를 서원하는 바이며, (…) 조선의 산업발전-농촌의 부력 배양과 도시의 상공화를 위하여-그 중에서도 특히 공업조선 건설의 사명을 깊이 자각하여 이 기운의 촉성(促成)에 전력을 다할 것을 서원합니다.

새 사옥을 준공하던 날의 사설이다. 조선총독부의 언론정책을 성실하게 실천하는 조선일보다운 글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의 공기’ ‘조선민중의 공기’를 말하지만 이 글에는 ‘조선인의 마음’이 티끌만큼도 담겨 있지 않다. 조선일보의 눈에는 국내외에서 두루 일어나고 있는 독립투쟁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단 말인가. 제도언론의 한계라 할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치더라도 조선일보가 마음 한 구석에라도 민족의 독립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느 대목, 어느 문장 속에 그 꿈을 담은 단어 하나쯤은 비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장 방응모에 대하여 그런 기대를 갖는다는 것은 연목구어일 뿐이었다는 것이 훗날 밝혀졌다.


‘총독정치 25년 특집’

1935년 10월 1일자 1면 기사(「시정[始政] 25년-금일 총독부에서 기념식」)

총독부에서는 10월 1일을 기하여 시정 25주년 기념식을 오전 9시 20분에 총독부 동측 광장에서 거행하는데 기념식이 끝나면 오전 11시부터 시정 이래의 물고공로자(物故功勞者) 및 순직자 초혼제를 근정전에서 거행하고 오후 1시에는 관민 3천여 명을 초대하여 대축하연을 개최한다.

이 날자 1면에서는 위 행사 안내기사만 조선일보가 직접 집필하고 나머지는 총독부 자료를 베껴 실은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는 비록 2단 처리되었지만 그 옆과 아래로 우원(宇垣) 조선총독 담화, 유고(諭告), 금정(今井) 정무총감 담화, 초대 총독 사내(寺內) 동상 제막식, 시정 25년사 각 방면 배포 등 다섯 건에 걸친 총독부 배포자료를 한데 묶어 세로 선을 박아 편집함으로써 눈에 잘 띠게 했다. 이 기사는 사실상 상단의 사설만 빼고 전체 지면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정상적 문제의식을 가진 독자라면 이 기사에서 ‘시정(始政)’이란 말에 주목했을 것이다. ‘정치를 시작한다’라는 것은 멀쩡한 거짓말이다. 조선시대에는 정치가 없었고, 총독부가 정치를 시작했다는 뜻이다. 일제가 조선왕조를 강제 합병절차를 거쳐 멸망시킨 다음 조선을 식민통치했다는 사실을 은폐하려고 이렇듯 그럴싸한 표현을 날조한 것이다. 조선일보가 이 표현을 그대로 받아 쓴 것은 조선일보의 정체를 선명하게 밝힌 경우라 할 것이다.


조선일보 또 지식인 타령

1935년 11월 26일자 사설(「지식인을 기르자」)

사람은 자연적이거나 인위적이거나, 싫거나 좋거나 간에 한 덩어리로 영고성쇠를 같이 할 운명을 가졌다. 일부 소수인이 불의로 혹은 요행으로 부와 귀를 누렸다 할지라도 이것은 사회 전체의 이해와 휴척(休戚)에는 관계가 없는 것이요, 명예도 광영도 될 수 없다. 사람 전체의 지지와 추앙을 받지 않은 부와 귀는 허위와 날조의 그것이다. (…)
그런데 사회의 현실을 보면 과연 이 학자, 평론가, 예술가 등 지식계급이 우대를 받고 있는가. 학자, 평론가와 예술가가 고래 부와 안일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로되 읽고 사색하고 쓰는 시간의 여유와 그 책 사고 생활할 최소한의 경제는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의 학자, 평론가와 예술가는 밥을 굶고 책에 주렸다. 생활에 쫓기고 가액(家厄)에 몰리는 이가 어느 틈에 독서와 사색이 되랴. 설사 10년, 20년의 정열을 가지고 이에 헌신하는 사람들도 필경 이 기적 사리생활로 돌아가고 만다. 현재의 사학(私學)은 상당히 있으며 지식계급을 수용하는 문화기관도 몇 개 있다. 그러나 그 사학에 공평히 생각하여 사회의 장래를 생각하고 사회를 위하여 헌신하겠다 하는 희생심을 가지고 있는 학자를 얼마나 수용하고 있는가. 돌아보아 지방적 파벌적 이해를 떠나고 경영자의 친소(親疏) 여하를 생각지 않고 사람을 뽑았다 할 수 있을까 (…)
혹은 말하되 지식계급은 모든 것을 희생하여 사회에 봉공(奉公)해야 할 것이며, 이해에 따라 좌우될 것이 아니라 한다. 그렇다. 지식계급은 과연 그러해야 한다. 생활난으로 자기의 생명인 학문, 예술을 버리고 사리적 영업으로 달아난다 하는 것은 변절이요, 추락이다. 그러나 남아서 고역(孤域)을 사수하는 이에게도 경영자, 혹은 사회의 대우가 냉담하고 사용인적(使用人的) 관념으로 대함에야 어찌 하랴. 진정으로 사회의 전체적 행복 및 발전을 생각할 때는 부자나 학자나 모두 이기적 사심(邪心)을 버리고 사회 전체를 위하여 노력하는 공인(公人)을 대우하고 많이 양성하여야 할 것이다. (…)
하필 조선이리오. 지식계급을 대우하는 민족, 사회는 흥하고 이것을 학대하는 민족, 사회는 붕괴하고 말 것이다.

호남의 유학자 매천 황현(1855~1910)은 1910년 음력 8월 7일 아래의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구절을 인용한다.

鳥獸哀鳴海岳嚬(조수애명해악빈)-조수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오.
槿花世界已沈淪(근화세계이침륜)-무궁화 이 세계는 망하고 말았구려.
秋燈掩卷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등불 아래 책을 덮고 지난 역사 헤아리니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세상에 글 아는 사람 되기 어렵기도 하다.

이 절명시 가운데서도 가장 가슴 아픈 구절이 네 번째 구이다. “글자나 아는 사람, 즉 지식인의 사람 노릇이 어려움”을 표현한 대목이다. 매천은 마약을 과다 복용하는 방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상 돌아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역사의식도 느끼지 않으며 살아가는 일반인들처럼 글을 몰랐다면 왜 죽을 이유가 있었겠는가. 이미 망해버린 무궁화나라에서 배웠다는 사람이 어찌 낯을 들고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던 그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면 더욱 희망이 없는 나라’가 될 것이라며 지식인답게 56세의 나이에 장렬한 자결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나라를 잃은 지식인이 절망 끝에 목숨을 버리기도 하는 상황에서 새삼스럽게 ‘지식인 타령’을 늘어놓고 있다. 일제에 부역하며 곡학아세나 일삼는 지식인이 필요하다는 뜻인지, 민족혼을 왜곡하고 내선일체를 주창할 지식인이 더 필요하다는 말인지 지식인 타령의 진의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일부 사학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김성수가 경영하던 중앙고보나 보성전문학교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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