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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가 뜨끈하다[우리가 남이가?(6)] 김미동 상담심리사ㆍ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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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2.1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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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들의 소풍(1982, 인천 광역시 시정 소식지)

연말이다, 이런 저런 모임이 많은 계절이다. 한 해를 잘 견뎌낸 대견함에, 혹은 따뜻한 위로가 그리워 저마다 시간을 내고 마음을 내어 연말 모임을 찾게 된다. 그러나 위로와 대화가 그리워 찾았던 모임이 오히려 상처받는 자리가 되어 안가니만 못한 경우도 종종 있다. 다음은 1980년대 말의 어떤 연말모임 풍경이다.

좌정하여 술잔이 오가다 보면 흥이 납니다. 흥이 나면 노래가 나오고 곱사춤, 배꼽춤 혹은 허슬로 분위기는 무르익습니다. 모든 걸 털어버려 잊어버리자고 모여 놓고선 지난 일을 되새기고 그러다보면 묵은 상처를 건드리게 되거나 어느 대목이 꼬투리가 되어 멱살잡이로 번져 난장판을 벌이는 부류도 있습니다. (동아일보, 1989.12.06.)

시기 질투 그리고 아니꼬움

요즘도 흥에 겨워 곱사춤, 배꼽춤을 추는 분들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대 놓고 멱살잡이는 아니더라도 가슴 저 밑바닥에서 일렁이는 아니꼬움과 시기, 질투는 너나없이 경험했을 것이다. 그 모임이 향우회나 동창회처럼 어린시절을 공유했던 모임이라면 그 농도는 더 짙어지게 마련이다. 다음은 강용자의 ‘양들의 울음’이라는 신문 연재소설 한 대목이다.

40대 후반이 되자 이대로 늙어만 가는 게 서글프다며 한번 모여 얼굴이라도 보자는 동창들의 연락을 받고 김 여사는 그저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갔었다. 그런데 여편네들의 돈 자랑, 남편 자랑이라니. 한반 동창 10여명이 모인 중에 절반이 모피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갈색밍크, 회색밍크, 핑크밍크, 블랙밍크, 은여우털, 금여우털.... 학교 때는 날라리로 공부 못하던 애가 벤츠를 타고 왔었다. (동아일보, 1991. 12.28)

금의환향 환상

비싼 모피 코트나 외제차를 전리품처럼 끌고 나와 부와 재력을 과시하지 않더라도, ‘어느 동네에 사느냐’,‘아이는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는 간단한 호구 조사에서부터 마음 속 파도는 일렁이기 시작한다. 거기에 상대가 소싯적 나보다 ‘못난 친구’였다면 그 파도의 세기는 더 커질 것이다. 속 좁은 여성들의 시기 질투라고? 오해요 착각이다. 남성들의 자기과시는 그 스케일이 남다르다. 승용차가 출세의 상징이던 시절엔 연말연시나 휴가철이면 자동차 수요가 폭증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교실(1976, 대한민국 정부)

회사원 이 모씨(37)는 지난 연말 고심 끝에 승용차 한 대를 처음 구입한 뒤 할부금 부담 때문에 요즘 애를 먹고 있다. (중략) 오랜만에 내려가는 고향에서 부모 체면도 세워야겠고, 자기도 서울 생활에 남부럽지 않게 정착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무리해서 차를 구입한 것. 실제로 서울시 자동차등록 사업소에는 설날이나 추석 명절과 휴가철에 자동차 등록 대수가 평소보다 급격히 늘어난다. 아직도 ‘승용차=출세’라는 등식이 통용되고 있는 시골고향에 자기차를 타고 내려가 자신의 지위와 재산을 과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1990. 3. 29)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금의환향에 대한 환상이 강한 듯하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은 물론 친척들, 고향 친구들, 그리고 마음의 고향인 동창들에게까지 장원급제하여 어사화를 머리에 꽂고 가마 타고 귀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학창시절로 돌아가자’는 서로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동창회는 언제부터인지 출세하고 돈 번 친구들이 서로의 성공을 확인하고 ‘금의(錦依)’를 과시하는 자리로 변해 버렸다. (중략) 이런 자리에 몇 번 참석하다 보면 자동차 없이 갔을 때는 중간에 슬그머니 빠져나오는 슬기까지 익히게 된다. 낚싯대 꽂은 고급 승용차를 타고 쭉쭉 빠져 나가는 성공한 동창들 사이에서 또 한번 자신의 상대적인 영락감을 맛보아야 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1990년 2월 27일)

금의환향에 대한 열망은 낚싯대 꽂은 고급 승용차와 모피 코트로 대체되어 자기과시로 이어지고 이것은 곧 누군가의 열등감을 자극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자기과시와 열등감은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다. 자기과시의 내면에는 아픈 열등감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아들러, ‘건강한 우월성을 추구하라“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은 누구나 열등감을 느끼기 마련인데, 열등감에 사로잡혀 개인적 우월성 추구에 집착한다면, 열등감의 노예가 되어 열등감 콤플렉스에 빠져 버리게 된다’, ‘열등감을 극복하고 우월성을 추구하면 심리적 건강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핵심은 열등감이 아니라 건강한 우월성을 추구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강한 우월성이란 어떤 것일까. 아들러는 ‘개인적인 우월성 추구를 넘어서 타인의 복지까지 돌볼 수 있는 사회적 관심으로의 확장이 동반될 때 비로소 건강한 우월성이 완성된다’고 한다.

연말 모임에서 자기과시로 누군가를 자극하거나, 그것에 자극 받으셨다면, ‘앗, 나는 열등감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돌아보시길. 이어 뒤통수가 뜨끈해지신다면, 당신은 ‘건강한 우월성’의 초대를 받으셨음을 기뻐하시길.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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