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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전쟁 시기를 ‘태평성대’라고 호도한 조선일보조선일보 대해부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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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2.1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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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1월 1일 사설(「연두사」)

(…) 첫째 사회적으로 보아 조선 사람으로 재인식을 요할 점은 우리는 단군 이래로 장구한 역사를 가지면서도 산을 모르고, 바다를 모르고, 하늘을 모르고, 오직 하나 평야(平野) 있는 줄만 알고 지내온 민족이라는 점이다. 조물주는 우리에게 삼면환해(三面環海)의 특수한 은전을 베풀었지만 오대양은 조선사람의 형영(形影)을 별로 볼 수가 없었다. 금수(錦繡) 그대로의 화려한 대산거악(大山巨嶽)을 풍부히 주었지만 산은 조선 사람의 족적(足跡)을 드물게 보았다. 수공일색(水空一色)의 명랑한 하늘을 주었지만 하늘은 조선 사람의 조인(鳥人)을 몇 사람이나 보았느냐. 총면적 1만4천3백12 방리(方里) 가운데 겨우 4분의 1에 해당하는 원야(原野)만이 조선 사람의 활동하던 유일한 무대였다. 이렇게 생각하면 세계 각국이 다 조선 사람 같은 역사밖에 더 못 가졌더라면 항공모함이 문제될 리 없고 초경급함(超輕級艦)이 문제될 것이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새해 즉 오늘 아침부터 시작하는 1935년의 세계적 위기도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조선인의 처지가 얼마나 가련(可憐)하냐.
여기서 우리는 신년벽두에 있어서의 사회 백년대계의 첫 소리로 “산으로 가자” “바다로 가자” “공중으로 날자”의 3대 표어를 제창한다. 문명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연을 정복할 수 있는 극한까지 정복하며, 이용할 수 있는 극한까지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지 않고는 정복할 수가 없고, 정복하지 않고는 이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3대 표어가 조선 사람의 손과 발에 의하여 실현되는 날을 기다려서야 우리도 비로소 문명을 말할 수 있는 반열에 참여하며, 그때에 가서야 비로소 우리도 남이 위기를 말할 때에 같이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질 것이다.
(…) 그러면 조선 사람을 개인으로 보아 고칠 점은 무엇이냐. 첫째 모험진취성을 가져라. 조선 사람은 나약하고 비겁한 민족이라는 평을 듣는다. 우리가 선조 대대로 오늘까지 산을 모르고, 바다를 모르고, 하늘을 모르고 지내온 것은 주로 그 원인이 우리의 나약비겁성에 있다.
둘째로 적극적 경쟁심을 가져라. 조선사(朝鮮史)를 들고 보면 조선 사람처럼 경쟁심이 맹렬한 민족은 드물 것이라는 암시를 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그 경쟁심은 적극이 아니요, 소극이었기 때문에 그 경쟁심이 사적(史蹟)으로 나타난 바는 흔히 시기, 질투, 모함, 당쟁, 골육상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래가지고는 개인으로도 사회로도 진전향상을 꾀할 수가 없고, 자약자의(自弱自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로 모임의 힘의 위대함을 알라. 종래 조선 사람의 활동은 일로 탄탄한 평원광야에 국한되었기 때문으로 우리는 모임의 힘의 위대함을 모르고 왔다. 그러나 산으로, 바다로, 하늘로의 위험한 길을 밟으려면 혼자의 힘으로는 안 될 것을 알 것이다.
넷째로 0반(0盤)밖의 00, 또는 이해를 초월한 무형(無形)한 이해에 눈을 떠라. 산으로, 바다로, 하늘로의 원대한 계획을 세워서 가려는 데는 눈앞의 소이해(小利害)와 근시적 인색심(吝嗇心)을 가지고는 도저히 그 이상에 도달할 수가 없다. 다섯째로 줏대를 굳게 가져라. 나침반 없이 움직이는 배가 헛일을 하기 쉬운 것 같이 사람도 역시 줏대가 없이 활동하면 일생을 두고 활동해도 그 활동은 헛일[徒勞]로 돌아가는 수가 많다. 줏대라는 의미는 예전 문자로 말하면 도(道) 혹은 입지(立志)에 해당할 것이요, 지금 말로 하면 주의(主義)에 해당할 것이다. 어느 때건 한 번 줏대를 세웠으면 그 후부터는 이해를 도외시하고 모험진취성 있게 적극적으로 꾸준히 그 줏대에 맞추어 나가는 다수의 개인을 소유하고서야 그 사회는 비로소 향상할 것이다.

이 사설은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에 이은 제2의 민족개조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제는 1931년 만주를 침략해서 괴뢰정권을 세운 이후 국제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으며, 조선인에 대한 사상 단속을 더욱 강화했다. 그럼에도 조선인의 독립운동은 국내외로 점점 그 투쟁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조선인은 만주와 중국의 상해, 남경 등지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했고, 조선 내에서는 노출을 피하기 위해 지하로 잠복하면서 독립투쟁을 강화해 가던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조선일보가 위와 같은 사설을 썼다는 것은 독립은 불가능한 것이니 생각을 바꿔서 일제를 인정하고 조선을 발전시킬 방법을 모색하여 보자고 독자를 설득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조선일보의 눈으로는 태평성대가 왔다고 본 것이다. 일제는 이미 1931년에 만주를 침공해서 괴뢰 만주국을 세움으로써 중국 대륙에 대한 침략 야욕을 드러냈다. 그와 함께 일제는 한국에서 식민지 지배와 수탈체제를 강화해갔고, 1930년대 중반부터 ‘내선일체’, ‘황국신민화’의 구호 아래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민족말살정책을 강행했다.

1930년대 독립운동은 이와 같이 군국주의적 지배가 압박되는 조건에서 전개되었다. 일제의 만주 침략에 따라 만주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독립운동의 지역적, 정치적 중심은 자연히 중국 관내로 이동했다. 하지만 군사적 중심은 여전히 만주지방으로서, 1940년 일본의 ‘대토벌작전’으로 타격을 받아 소련으로 이동하기까지 유격부대와 중국 공산당이 지도한 동북인민혁명군, 동북항일연군 등이 활동했는데, 특히 조선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는 제1군과 제2군은 그들의 투쟁 본거지였다.

이 시기 독립운동의 조직적 특징은 이념 중심의 정당 형태로 나타난 점이다. 여러 정당 형태로 나타난 독립운동세력은 1931년 일제의 만주 침략에 직면함으로써 다시금 통합운동을 벌인 끝에 1935년 좌우익을 망라한 통일전선 정당인 조선민족혁명당으로 태어난다. 이후 통일전선운동이 정당을 기반으로 꾸준히 추진되다가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와 범좌익 연합체인 조선민족전선연맹이 차례로 결성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는 막바지에 의견 차이로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이 밑거름이 되어 마침내 1942년에 임시정부의 좌우합작이 이루어진다.
국내에서는 신간회 해체 이후 독립운동의 중심이 학생운동과 농민·노동운동으로 계승되어 갔다. 그리고 운동은 주로 비밀조직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농민층의 몰락과 한반도 병참기지화 정책을 배경으로 고양된 대중운동은 혁명적 농민조합운동과 노동조합운동으로 발전했고 그에 따라 식민지체제를 타파하는 정치투쟁으로 상승했다. 이러한 대중투쟁은 조선공산당 재건운동과 깊게 결합되어 전개되다가 후반기에 들면서 점차 좌익 편향을 벗어나고 있었다.

조선독립운동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창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던 중대한 시기에 조선일보는 1935년을 맞이하면서 해괴한 ‘3대 목표’를 제시하면서 혹세무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조선일보의 자화상이다.

공산당의 노동계 확장을 경계

1935년 2월 17일자 2면 기사(「각지 대공장 족생[簇生]과 적화[赤化] 방지책 재강화」)

경무국에서는 조선 산업의 급격한 공업화 계획이 추진됨에 따라 공장 적화계획의 방지를 위하여 경찰과 공장 간의 연락을 긴밀히 하여 적색운동의 취체책을 강구하게 되었다 한다.
최근 조선 내의 공산운동은 전 조선적 통일조직을 가진 대규모의 조직체를 경찰에서 검거한 적은 없으나 한 도(道) 또는 수개 도를 망라한 교묘한 지하조직체는 작년 중에도 서너 건을 검거하였다는데 수년래 조선 내의 광업열의 발흥과 대재벌에 의한 각종 공업의 기업계획이 구체화하는 것이 격증하여 공장노동자는 격증하여 갈 뿐만 아니라 이삼년 내에 계획 중인 각종 공장이 완공되면 조선 내의 공장노동자는 현재의 배 이상 증가할 것이므로 공산당에서 그들 공장노동자의 적화계획은 더욱 맹렬할 것이라 한다.
작년 중에도 그 실례로서 함남북(咸南北)의 광산과 화학산업공장의 적화계획을 비롯하여 경성, 인천 또는 부산 등지에서 공장 적화계획이 여러 차례 적발되어 조선 내의 공산운동이 도시지식계급으로부터 농촌으로 또는 도시 인접지의 공장지대로 그 운동방향이 바뀌어 완전한 지하조직에 의한 적화공작을 하고 있으므로 경무국에서는 공장법의 긴급한 제정을 식산국(殖産局)에 요구하게 하는 동시, 공산적화계획의 공산운동 취체책으로는 공장 당국자와 긴밀한 연락을 하여 적색인물의 공장 내 잠입을 방지하며 외부로부터의 공장 적화계획을 방지하기 위하여 공장 내의 노무계(勞務係) 또는 인사계 사상계에 직원을 특설시켜 경찰과 항상 연락하여 공장 적화를 막기 위한 방비의 진을 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의 국내 독립운동은 당국의 철저한 탄압과 방비책 때문에[ 지하화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국권 상실에 대한 통한이 민중 속으로 확산되어 감에 따라 공장노동자들도 독립사상을 품게 되는데 철저한 지하운동인 공산당 활동이 비교적 안전한 방법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만주로의 탈출이 쉬운 조·만 국경지대에서 공업화의 물결을 타고 급격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는 이에 대한 총독부 당국의 대책을 소상하게 보도한 것이다. 이 기사에 쓰인 ‘족생’이란 표현은 “떨기가 더부룩하게 솟아난다”는 뜻이다.

정치 없는 암흑세상에 ‘문인은 각성하라’

1935년 3월 2일자 사설(「문인과 사회-문인에 대한 이해가 급무」)

한 민족의 생활양상은 정치형태로 나타난다. 정치가 없는 민족에게는 생활이 있는지 없는 지를 알 수조차 없게 만든다. 그러나 정치가 없더라도 생활은 있을 수 있다. 유대인은 정치가 없더라도 생활을 하고 있으며, 동인도회사 침략 당시의 인도는 거의 무정부 상태였으나 인도인의 생활이 있었다. 사람들은 정치가 없는 속에서도 살고 먹고 생각하고 글 쓰고 있다. 오직 정치가 없었기 때문에 그 양상을 여실히 표현하지 못하였을 뿐이다.
이에 있어서 민족에게 문학은 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문학은 실로 인생, 민족, 인류의 생활 양상을 표현하고 인생의 갈 길을 시사하는 예술이니 정치 있는 민족에 정치와 아울러 민족의 양상을 표현하고 민족을 지도하는 지도원리를 창조하는 위대한 소임을 연(演)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정치 없는 민족에게도 민족생활의 양상을 표현할 수 있고, 민족정신의 진의 (眞意)를 인식케 하는 대업(大業)을 할 수 있다.
세계 인류가 다투어 문학을 숭상하고 문사(文士)를 우우(優遇)함은 이런 의미가 아니랴.
영국인이 인도제국을 잃을지언정 셰익스피어를 바꿀 수 없다 하고 일본 의회가 평내(坪內) 박사의 서거를 국민의 총의사로써 애도의 뜻을 결의한 것은 저간의 소식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면 왜 조선의 문인은 만리 장정을 앞두고 혹은 짓밟히며 혹은 찌들어지는가. 의지의 박약인가 환경의 불리함인가. 의지의 박약도 그 태반이 안 됨이 아니다. 원래 문인은 한사(寒士)라 하여 부귀를 구름 같이 알고 영예를 헌신짝처럼 알아야 한다. 그들이 광산을 찾고, 고리대금을 찾고, 관청의 안락의자를 찾는 것은 문인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자다. 그러나 문인도 한사일망정 이슬을 먹고 사는 매미는 아니다. 그들이 먹고 입고 살 재정적 여유와 독서하고 사색하고 저술할 시간적 기회를 주지 않으면 가치 있는 문학은 나올 수 없다. 조선에서 문인이 못 나온다는 말은 문인 되려는 사람의 의지의 박약에 일부분의 책임이 있으나 대부분의 책임은 문학을 이해치 못하고 문사를 옛날의 한사로만 생각하는 일부 고루편견자(固陋偏見者)에게 있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의 기업조직은 모두 영리주의에 치우쳐서 문학도 일개의 상품으로 간주하고, 문사를 일개 00인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문인 또는 문인이 되려는 사람으로 하여금 전도를 낙망자 실(落望自失)케 하고, 오직 호구에 급급하여 그 산출문학(産出文學)이란 속세적 저열한 취미에 영합케 하니 이는 오직 조선에 한한 것은 아니로되 특히 생장하려는 조선문학에 있어서 절통할 상처를 만들었다. 과연 조선에는 노벨상이나 각국에서 각기 영예로 삼는 문학상의 기금으로서 사회에 던질 독지(篤志)는 없는가.

정치가 없다는 것은 나라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나라가 없어도 먹고 살며 문화를 가꿀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문인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당시 문인 가운데 이 주장에 동의하거나 동조할 사람이 과연 있었던 것인가. 친일문인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주장에 귀를 기울였을까. 조선일보다운 해괴망측한 논리이다. 그러면서 문학상을 줄 만한 기금을 조성하자고 호소한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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