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출신 방송인이 있다. 그는 토크쇼를 진행한다. 밧줄로 온몸을 묶고 다이빙하는 차력사를 인터뷰하거나, 도난당한 소시지 1톤의 행방을 추적하며 방청객의 웃음을 유도한다. 영국 출신인 그는 주로 호주에서 활동 중이다.

그런 그가 미국의 전직 대통령, 그것도 워터게이트로 하야한 뒤 2년 넘게 칩거 중인 닉슨을 인터뷰하겠다고 나선다. 우리로 치자면 유재석이나 신동엽이 출옥한 박근혜를 만나는 모양새 정도가 되려나? 1977년, 놀랍게도 이 시도가 이루어졌고 지금에 와서는  ‘20세기 최고의 인터뷰’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영화는 이 사건의 막전막후를 극화했다.

문제적 인터뷰이 리처드 닉슨(프랭크 란젤라)을 카메라 앞에 끌어낸 당돌한 인터뷰어는 데이비드 프로스트(마이클 쉰). 그가 처음 인터뷰 계획을 밝혔을 때 방송국은 물론, 닉슨조차 코웃음을 친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사방에서 빚을 끌어다 닉슨에게 60만 달러를 쥐어주곤 (전직 대통령의 왕성한 물욕을 자극한 끝에) 일을 성사시킨다. 프로스트가 닉슨 인터뷰에 그토록 매달리는 까닭은 단순명료하다.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안내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 미국에서의 성공은 다른 어떤 곳에서의 성공과도 다르거든.”

프로스트는 영국과 호주를 주변부라 여긴다. 그는 중심부, 미국에서 성공하고 싶다. 그러나 상대는 30년 넘는 정치 역정 끝에 미국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던 노회한 정객. 게다가 닉슨은 프로스트를 역이용할 생각이다. 어리숙한 코미디언을 구워삶아 워터게이트로 추락한 자신의 이미지를 세탁하고 정계에 복귀하겠다는 야무진 계획이다.

아니나 다를까. 12회(총 30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프로스트는 판판이 닉슨의 수에 말려 힘을 쓰지 못한다. 이제 마지막 한 회분 녹화만 남긴 상황, 닉슨은 인터뷰를 11:0으로 자평하며 득의만만하고, 프로스트는 파산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된다. 전국 네트워크를 가진 방송국에서 알맹이 없는 인터뷰를 사줄 리 만무하기 때문. 무엇보다 동료들의 힐난이 가슴을 후벼판다.

“이 인터뷰로 닉슨에게 면죄부를 준다면, 그건 최악의 범죄를 저지르는 거야.”

마침내 마지막 인터뷰. 내내 질척대던 프로스트가 조사원이 새롭게 밝혀낸 단서를 내밀며 닉슨을 파고든다. 당황한 닉슨. 들고 있던 방송 원고를 바닥에 내려놓은 프로스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국민들이 당신에게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있어요.

첫째, 나는 범죄를 저질렀다.
둘째, 대통령의 권력을 남용했다.
셋째, 나는 국민들에게 고통을 줬고 그것에 대해 사과한다.”

이 말에 대한 닉슨의 대답이 영화의 절정이다. 프랭크 란젤라의 우렁우렁한 발성과 클로즈업 상태에서 펼치는 표정 연기가 압권인데, 그 탓에 닉슨에 대한 연민마저 생기는 게 부작용이라면 부작용.

파면당한 대통령 박근혜가 감옥에서 나올 즈음, 그를 인터뷰할 저널리스트에게, 그리고 그 인터뷰를 지켜봐야 할 시청자들에게 좋은 예습거리가 될 것 같다. 아마도 탄핵 전, 모 인터넷 방송과 했던 식의 인터뷰(그것도 인터뷰라고 할 수 있다면)라면 보람 없는 예습이 될 테지만.

그밖에

* 론 하워드 감독은 이 영화 촬영에 들어갈 즈음, 1972년 대선에서 닉슨을 찍었다고 밝히면서 “그러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 프로스트와 닉슨의 실제 인터뷰는 4천 5백만 명의 시청자를 끌어 모으며 정치인 인터뷰로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았다.
***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닉슨은 헐리우드 영화가 가장 많이 다룬 대통령 중 하나다. 주연으로 나오는 <닉슨, 1995>, <은밀한 영광, 1984>은 물론, <버틀러:대통령의 집사, 2013>, <포레스트 검프, 1994> 등에서 비중있는 조연(주로 악역)으로 등장한다.

평점 : IMDB(7.7/10), 로튼 토마토(92/100), 왓챠(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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