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있는 적폐도 적폐지만, 우리 옆 적폐도 문제야.”

파업 65일차를 맞은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성재호·KBS본부)가 7일 오전 찾은 곳은 법무법인 ‘바른’이었다. 바른 변호사인 이원일 KBS 구여권 이사 사퇴를 촉구하기 위해 조합원 350여 명이 모였다. 집회 현장에 있던 한 조합원은 기업노조인 ‘KBS노동조합’(1노조)에 불만을 드러냈다. ‘위에 있는 적폐’인 KBS 이사만큼이나 ‘우리 옆 적폐’인 KBS노동조합도 문제라는 것이다.

지난 6일 KBS 경영협회, 기자협회, PD협회 등 10개 직능단체는 “KBS노동조합이 6일 비대위에서 고대영 KBS 사장과 단체협상을 체결하는 조건으로 파업 철회를 논의한다는 소식이 들린다”며 KBS노동조합을 도마 위에 올렸다.

이들은 “KBS인들의 희생과 열정을 사리사욕과 맞바꾸는 것”이라며 “만일 고 사장이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기 위해 던져주는 임금 몇 푼이나 근로 조건에 넘어가 단체협상을 체결한다면 결국 공정방송을 내세워 자기들 밥그릇이나 챙기려고 파업했던 것이라는 국민들의 오해에 도대체 무엇이라고 변명할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고대영 KBS 사장이 지난 9월1일 오후 63빌딩에서 열린 방송의날 축하연 입장 중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의 퇴진 요구를 받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이치열 기자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박희봉 KBS노동조합 공정방송실장은 7일 “사실무근”이라며 “파업 상황과 방송법 개정 사안을 공유하고 실무적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끝났다. 협회가 왜 그런 성명을 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단협이나 파업 철회 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의미 있는 논의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3년 전 길환영 전 KBS 사장을 몰아낸 양대노조 파업과 달리 이번 파업에선 두 조직 간 ‘엇박자’가 나고 있다. KBS본부가 고 사장과 이인호 KBS 이사장 퇴진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법 개정’에 중점을 둔 기술직군 중심 KBS노동조합 존재는 신경 쓰이는 요인이다. “고대영 퇴진과 방송법 개정은 함께 가야 한다”는 KBS노동조합 행보는 자유한국당·바른정당·국민의당 등 야3당의 방송법 개정 움직임을 고대영 체제 유지를 위한 ‘정치 야합’이라고 규정한 언론노조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성재호 본부장이 이끄는 KBS본부는 KBS노동조합 파업 철회 여부와 무관하게 고 사장 퇴진까지 끝장 파업을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다만 지난달 김경민 KBS 이사 사퇴 이후 KBS 구여권 이사들의 추가 사퇴 소식이 들리지 않고, 고 사장 역시 “사퇴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파업 장기화는 불가피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KBS에 대한 비판적 관심이 높았던 것과 달리 이번 파업은 상대적으로 여론의 관심이 떨어진다는 점도 파업 장기화 요인이다.

이를 반전시킬 변수는 있다. 우선 감사원은 지난달 17일부터 KBS를 상대로 이사진 업무추진비 집행에 대한 실지감사를 진행했다. 법인카드 유용 규모와 정도에 따라 KBS 이사들에 대한 징계 수위와 거취 문제가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구여권 이사 가운데 한 명이 사퇴하면 MBC처럼 정상화 ‘급물살’을 탈 수 있다. 7일 바른 앞 집회에서 KBS본부는 이 이사가 법인 카드로 개인 업무와 식사비에 2100여만 원을 지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강규형 이사의 법인카드 사용 논란, 이인호 KBS 이사장의 관용차 사적 이용 등 KBS 이사들의 ‘도덕 불감증’은 누차 지적돼 왔던 사안이다.

성재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장이 지난달 25일 총파업 집회에서 만원 다발 소품을 들고 고대영 KBS 사장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고 사장은 MB 국정원으로부터 보도 청탁 대가로 200만 원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고 사장의 국정원 금품 수수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도 진행 중이다. 지난 3일고소인(성재호) 조사까지 마쳤다. 고 사장이 KBS 현직 사장 최초로 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문제는 오는 1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KBS 국정감사에서 다시 쟁점화할 전망이다.
아울러 방송통신위원회의 ‘권한 행사’가 요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즉, 문제적 KBS 이사들에 대한 해임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재호 본부장은 “KBS 이사들은 고 사장이 뇌물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데 징계하거나 해임할 생각을 포기했다”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불량 이사들을 추천한 방통위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성 본부장은 “현재 방통위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뒷짐만 짚을 생각”이라며 “‘불량 이사들’은 국민 수신료로 자기 뱃속만 채우는 데 급급했다. 하루빨리 자진사퇴해야 하며 그게 안 된다면 방통위가 권한을 행사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 글은 2017년 11월 08일(수)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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