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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깝다! 몬주익 경기장[내 인생의 취재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전기밥솥 삼시세끼
〈박인규 전 KBS PD / 현 (주)낙안명주 대표〉
  • 관리자
  • 승인 2017.10.16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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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내가 탄 비행기는 김포공항을 떠나 파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바르셀로나로 날아갔다. 나는 그때 입사 7년차 초년병(?)이었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치러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별 두려움 없이 첫 해외 올림픽 취재단에 포함되어 현지로 날아간 것이다. 그것도 사전취재단 이름의 선발대로.

막내 PD, 현지식 담당

현장으로 떠나기 전 현지식 준비는 막내였던 나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다. 서울올림픽을 치러봐서 잘 알게 됐지만, 올림픽이 치러지는 현지의 숙소에는 올림픽 개최국에서 운영하는 식당은 돈을 내야 한다. 우리는 쥐꼬리 같은 출장비를 아끼기 위해서라도 체재 기간 40여일을 대부분 우리가 준비해 간 한식으로 해결하기로 했던 것이다.

우선 3분 즉석국을 종류별로 한 달 동안 먹을 양을 샀다. 사골곰탕, 북어국, 미역국, 등등…… 김치는 종갓집 김치를 사서 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냉장고에 넣어서 꽁꽁 얼렸다. 한 달을 먹고도 남을 만큼의 양을 말이다. 내가 준비한 것은 김치와 3분 즉석국이 전부였지만 이게 현지에서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했는지는 나중에 알게 되시겠다.

당시에 나는 KBS 제1라디오 프로듀서였다. 라디오 취재팀 선발대는 현지 IBC에 스튜디오를 설치하는 엔지니어와 올림픽 개최 도시 사전 취재 PD 4명이이었다. TV본부와 보도국에서도 선발대가 참여했지만 서로 부서가 달라서 몇 명이 왔는지 몰랐다. 라디오에서는 왕고참 부장 PD 1명, 중견 PD 2명, 막내인 나, 이렇게 4명이 현장 선발대에 포함됐다. 통상 올림픽 경기는 15일 동안 치러지고 대부분의 방송 요원들은 이 기간 동안 현장에 있지만 선발대는 올림픽 기간을 포함해서 약 40일간 현지에 머물면서 올림픽 시작 전 개최 도시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올림픽이 시작되면 경기장 현지에 투입되어 취재하고 IBC로 돌아오거나 현장에서 방송에 연결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사전 취재단 4명이 배치 받은 숙소는 우리로 치면 잠실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정도 되는 곳이었다. 메인 스타디움인 몬주익 경기장은 서울로 치면 상암 동쯤에 있었고, IBC도 몬주익 경기장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25년 전 일이라 이제 기억도 가물거린다.

전기밥솥 구하기 작전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우리 선발대가 맨 처음 한 일은 전기밥솥을 구하는 일이었다. 올림픽 취재단 숙소는 우리 잠실 올림픽 선수촌 분양 방식을 그대로 본따서 그런지 신축한 아파트를 취재단 숙소로 제공했는데 아뿔싸 주방은 막아 버려서 취재단 숙소에 있는 식당에서 그 비싼(^^*) 밥을 사먹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사막에서 팥빙수 만들어 먹고 알래스카에서 김치 담가 먹을 수 있는 기질을 가진 민족 아닌가?

현지 코디를 꼬여서 엄청 멀리 떨어진 교민 집에 쓰지 않고 모셔둔 전기밥솥을 수배했다. 그런데 바르셀로나에서 거기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서 아예 취재를 핑계로 부장님을 따돌리고 전기밥솥 수배에 나섰다. 말이 전기밥솥 수배지, 취재를 핑계로 바르셀로나 근처 관광에 나선 거나 진배없었다.(취재를 안 한 것은 아니다)

암튼 전기밥솥을 구한다는 미명과 현지 취재를 빌미로 몇 백 킬로미터 떨어진 교포 집에서 구형 전기밥솥을 구하는 데 성공하고 이왕나선 김에 몇 군데 취재를 빙자해서 산천유람을 했다. 기억에 남는 곳이 피레네 산맥 정상에 위치한 안도라 공화국이었다. 그 크기가 여의도 만한데 전 세계 명품이란 명품은 다 모아 놓고 파는 산상 쇼핑낙원이었다. 뭐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이었지만 말이다. 이탈리아 베니스와 비슷한 동네인데, 베니스가 바닷가에 있다면 이 안도라 공화국은 3,000미터가 넘는 피레네 산맥 정상에 있다는 것이 달랐다. 관광객이 넘쳐나는 것은 똑같았고.

삼시세끼를 거실에서 해결하다

암튼 전기밥솥도 구하고 사전 취재(^^*)도 충실하게 한 우리는 바르셀로나로 돌아와서 전기밥솥 달랑 한 개로 한달 내내 선발대와 본진의 모든 식구들을 식당에 가지 않고 아파트 거실에서 삼시세끼 식사를 해결하도록 했다. (그 어떤 취재보다 중요한 일을 우리가 한 셈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우선 새로 문을 연 근처 대형 마트에 갔더니, 헐! 전 세계 쌀이란 쌀은 다 있다. 캘리포니아 쌀이 우리 쌀이랑 맛이 비슷하다 하여 그것을 샀다. 김치는 준비해간 것이 있으니 걱정이 없고. 캘리포니아 쌀이 좀 단단해서 아침에 취재 나가면서 씻어서 불려놓고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와서 밥을 했다.

전기밥솥은 꽤 컸던 것으로 기억된다. 15인분 정도 밥을 먼저 해서 퍼 놓고 그 다음 밥알이 붙어있는 전기밥솥에 물을 붓고 끓이면 신기하게도 밥솥인데 물이 금방 펄펄 끓었다. 여기에 한국에서 공수해 간 3분 즉석국을 넣고 끓여서 배분하고, 냉동실에서 냉장실로 옮겨놓고 갔던 종갓집 배추김치를 꺼내고, 당시 라디오 스포츠 프로그램 MC를 하던 정현숙씨가 만들어온 매콤한 청양고추 간장조림을 뜨거운 밥에다 한 숟가락씩 뿌리고, 즉석국과 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훌륭한 성찬이 되었다.

가끔 식당에서 무슨 밥이 나오나 궁금해서 한두 번 먹어 본 것을 제외하고는 한 달 내내 한국에서 공수한 김치, 즉석국, 청양고추 간장조림으로 식사를 때웠다. 다른 방에 들어와 있던 보도국 식구들이나 엔지니어 식구들은 우리 식탁을 보고는 부러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전기밥솥으로 밥하지, 국 끓이지, 김치 있지, 청양고추 간장조림 있지, 해외 취재 가서 이렇게 우리 음식을 잘 먹어 본 것도 바르셀로나 올림픽 취재가 유일했다.

물론 먹고 놀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전 취재를 ‘충실하게’ 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가고, 달리가 지었다는 집도 가고, 이번에 묻지 마 자동차 무한 질주 사고가 난 람블라스 거리도 가고, 바르셀로나를 샅샅이 뒤져서 2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3편 제작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카메라맨 목숨을 구하다

재미있는 일화 하나. 라디오 취재단은 경비가 적었다. 보도국은 상대적으로 취재비가 빵빵한지, 하루는 바르셀로나 상공에서 취재를 위해서 헬기를 대여했다는 것이다. 우리 왕고참 부장님을 설득해서 라디오 PD도 한 명 탑승하기로 했다. 카메라도 없는 라디오 PD가 헬기 타고 올라가서 뭐 할게 있을까마는 그래도 헬기 소리 섞어 가면서 리포터 꼭지 하나 만들면 현장감 최고겠다, 생각하고 보도국 이명구 선배를 설득해서 바르셀로나 상공을 선회하면서 취재를 했다.

하지만 라디오 PD가 녹음기 들고 하늘에서 할 것이 뭐 있겠는가? 이명구 선배가 TV용 리포터 1분 30초 분량을 녹화하고 나니 시간이 넉넉하게 남았다. 드디어 라디오 PD가 헬기 속에서 바르셀로나를 내려다보면서 말로 스케치를 하는데, 왜 그리 NG가 계속 나는지…… 한 10여 차례 시도 끝에 겨우 마무리했다. 이명구 선배와 동기 카메라맨이 참 한심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아주 꿋꿋하게 하늘에서 최초로 라디오 녹음 리포터를 할 수가 있었다. ^^* 내겐 라디오 PD의 자긍심이 있었던 것이다.

TV 리포터는 녹화를 끝내고, 라디오 프로그램 녹음도 끝났다. 이제는 카메라맨이 바르셀로나 상공 여기저기를 자료 화면으로 찍을 차례다. 당시만 해도 헬기 문을 열고 카메라맨이 몸을 구부려서 ENG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던 시절이다. 옆에서 구경하던 그 장면을 지켜보던 나는 사색이 됐다. 카메라 기자의 안전벨트가 풀려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죽자 사자 하고 안전벨트를 붙들고 늘어졌다. 이 친구는 그런 줄도 모르고 하늘에서 바르셀로나 전경을 찍는라 정신이 없었다.

그 카메라 촬영의 주인공 이름은 노수긍. 나와 입사 동기였는데 이름부터 수긍이 안 되는 동기다. 내가 안전벨트를 붙잡아 주지 않았으면 그는 카메라를 어깨에 맨 채로 바르셀로나 대로에 추락할 뻔했다. 그 어마어마한 불상사를 내가 막은 것이었다. 그 이후로 그 친구는 나를 생명의 은인이라며 회사를 그만 둘 때까지 만나기만 하면 술을 샀다.

황영조 육성 딸 수 있었는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땄다. 올림픽 경기 마지막 날, 아침부터 우리는 과연 오늘 황영조 선수가 잘 할 수 있을까, 궁금해 하면서 설왕설래했다. 몬주익 경기장 안에는 취재진이 아닌 고위 간부만 들어가시고 정작 취재진은 IBC에서 TV 중계로 황영조 선수가 몬주익 경기장에 1등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멍하니 쳐다봐야 했다. 그때 몬주익 경기장 관람석 비표만 받았더라도 펜스를 넘어가 태극기를 목에 걸어주고 그 환희의 순간에 황영조 선수의 육성을 딸 수도 있었는데……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아마도 펜스를 넘자마자 경호 요원에 체포됐겠지만, 암튼 그 순간에는 그런 생각이 마구 들었다.

황영조

1992년 바르셀로나는 여러 가지 일화로 지금도 생각해 보면 가슴 뛰던 취재의 순간이었다. 올해가 25년 되는 해니 30년 되는 해에는 같이 갔던 취재진들과 기념여행 가서 전기밥솥으로 밥이나 해먹어 볼까?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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