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1970년대의 명절, 추석 스케치 신문기사들을 보면 대개 ‘낭만적’이다. 온가족이 둘러 앉은 시골집, 도시에서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귀성한 자식들, 행복한 함박웃음… 그리고 으레 따라붙는 기사제목은 ‘한가위만 같아라!’ 류다. 명절이면 전기밥통이나 TV 같은, 도저히 들고 가기에는 부피나 무게가 버거운 선물을 전리품처럼 이고 지고, 고향으로 향하는 만원 기차에 기꺼이 몸을 싣곤 하던 사람들. 그런데 2017년, 어쩌다 그들 중 5명중 1명이 명절 스트레스를 앓게 되었을까.

추석을 맞은 여성들이 송편을 빚고 있다. (1957년 / 사진=국가기록원)

보자, 도대체 50년 전과 오늘날의 명절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진 것일까. 곰곰 살펴보면 명절을 치르는 형식만 제외하고 사실 모든 게 달라졌다. 우리의 명절은 여전히 평소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부계가문을 중심으로 모여 부계가문의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것이 명절 행사의 핵심이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 더 이상 주부들은 가사 일에만 전념할 수 없는 경제구조가 되었고, 남성들은 정년퇴직을 보장 받을 수 없게 되었으며, 정년 이후에도 20~30년의 불안하고도 긴 노후가 기다리고 있다.

‘단대신문’ (2015.09.22.)

특히 청년실업률은 심각하여 2016년은 1999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가장 높은 실업률을 기록하였다(통계청, 2017). 결혼률 역시 감소하여 2016년의 결혼률은 사상 최저로 나타나고 있다(통계청, 2017). 거기에 1인 가구 비율도 증가하여 1990년(9%)에 비해 2015년(27.2%)에는 3배로 증가하였다(통계청, 2016). 게다가 1970년대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며 딸만 낳았던 집에서는 시댁에 명절을 치르러 갔던 딸들이 언제쯤 친정에 들리려나 목 빠지게 기다리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이러한 급격한 사회경제적 변화가 명절 스트레스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인간은 스트레스 자극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하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스트레스 자극에 대한 적응 여부가 결정된다. ‘명절이라는 사건’ 또한 하나의 스트레스이며, 그에 대처를 잘 하게 되면 무난히 적응하게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명절 증후군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 능력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치관은 중요한 심리적 대처 자원이다.

그런데, 명절 행사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은 가족에 대한 가치관이라 할 수 있는데, 급격한 사회경제적 변화는 기존의 가족주의 가치관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IMF 외환위기 이후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급격히 증가하여 이제 더 이상 남자의 일은 돈 버는 것이고 여자의 일은 가사일이라는 전통적인 성역할 가치관을 고집하기가 무색해진 것이다. 사상 최악의 취직난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3포 세대의 청년층에게 ‘취직은 어떻게 되었냐’, ‘결혼은 언제 할거냐’는 삼촌, 고모의 훈수는 ‘우리가 남이가’의 친족유대가 아닌 ‘남보다 못한’ 비수가 되어 꽂힌다.

또한 기존의 가족주의 가치관은 새로 유입된 서구의 개인주의적 가치관과 충돌하고 있다. 노년층에서는 수직적 관계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삶의 방식에 익숙해 있지만, 중년층은 개인주의적인 삶의 방식을 더 선호하고, 청년층에서는 수평적인 관계를 강조하는 서구식 삶의 방식에 매우 익숙해 있다.

물밑에서는 이렇게 엄청난 변화가 소용돌이 쳐 서로의 가치관이 충돌하고 있는데, 명절 형식은 60~7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으니, 각 세대마다 다른 가족가치관이 명절 한 자리에 모여 그야말로 동상이몽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거기에 가족마다 해묵은 갈등이 더해지면 명절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이 되고 만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혹자는 우리 사회가 겪어내야 할 일종의 ‘성장통’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번 추석 연휴, 평안하시길. 그런데, 혹시라도 명절스트레스를 받으신다면, ‘이기주의가 만들어낸 꾀병’도 아니요, 누구 혼자만의 잘못 때문이 아님을 기억하시길.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가 지켜야할 경계를 부디 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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