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가 코 앞이다. 장장 열흘이다. 학생들 방학도 아니고, 장장 열흘이라니! 당신은 어떠신가? 이 열흘이 마냥 기대 되시는가? 혹시 목에 가시라도 걸린 것처럼 뭔가 거슬리고 불편하신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대한민국의 주부이자 아줌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기사 요즘은 주부나 아줌마가 아니더라도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사이좋게 스트레스를 주고받는다.

추석같은 명절이 찾아오면 TV 등 온갖 매체들은 으레 수십년 묵은, 그래서 뻔하디 뻔한 ‘단란한 가정’을 보여주곤 한다. 남쪽 지방 어디에서 대대로 떵떵거리며 살아왔다는 어느 양반가의 ‘종가집 며느리의 한 생’을 보여주기도 하고, 집안의 핏줄과 전통을 지키기 위해 이 한몸 희생하여 서울살이를 포기한 그 집 장손의 낙향기를 소개하기도 한다. TV 속의 우리네 명절은 따뜻하고 의미가 넘쳐 흐른다. 지겨운 동어반복.

귀성열차 (1968년)

하지만 TV 밖의 현실은 딴판이다. 언제부터인가 동전의 양면처럼 명절하면 따라오는 말이 명절 스트레스다. 올해도 추석을 앞두고 어김없이 각종 매체들이 명절 스트레스를 언급하고 있다. 바로 며칠 전에 나온 명절 스트레스 관련 기사를 한편 보자.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아르바이트포털 알바몬에 따르면 최근 직장인 및 취업준비생 2천892명을 대상으로 공동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의 77.5%가 '명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취업준비생이 80.2%로, 직장인(74.6%)보다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응답 비율이 다소 높았다. 특히 직장인 가운데서는 기혼여성(81.1%)이 가장 많았으며, 미혼여성(76.1%)과 기혼남성(74.1%), 미혼남성(70.5%)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중략) 전체 응답자의 50.1%는 과거에 '명절 우울증'을 겪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시 취업준비생(51.1%)이 직장인(48.7%)보다 응답 비율이 조금 높았다. 〈연합뉴스, 2017. 09. 21〉

추석 제례를 올리고 있는 4대. 80세의 며느리가 시부모의 묘에 절을 올리고 있다. (1980년, 경북 금릉군)

성인 5명 중 4명은 명절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쯤 되면 말 그대로 전국민적 스트레스다. 이번 추석에도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밀리는 고속도로를 뚫고 ‘진격의 거인’이 돼야 할 것이다. 특히 며느리들은 늦어도 하루 전쯤 시댁에 도착해야 시어머니, 동서 등의 눈치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이런, 그들 또한 여성인데!) ‘삼시세끼’ 프로그램을 찍는 것도 아닌데, 하루종일 상차림과 설거지를 무한반복해야 할 것이다. 예민한 주부는 벌써부터 달력을 보며 두통과 복통을 앓고 있을 것이다.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심리적 부적응 상태를 보이고 있을 것이다. 이런 증상을 ‘며느리 증후군’이라고 명명한 것은 1993년의 한 일간지 기사였다.

며느리 증후군. 한 대학병원(한림대학교 강동성심병원)의 ‘건강백과사전’은 “명절증후군이란 명절을 맞아 스트레스 대처능력이 미숙하거나 약할 때 발생하며, 그 증상으로는 짜증, 복통, 두통, 그리고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쑤시는 등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이상 증상들이 나타난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20여년 전만 해도 신문과 여론은 며느리 증후군이나 명절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여성들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얼마전 TV 보도에 20∼30대 주부들이 「명절 증후군」 내지 「며느리 증후군」 때문에 즐거워야 할 명절이 고달프고 괴로운 명절로 인식되고 있다고 한다. 해마다 명절 때만 되면 시댁에 가서 제수음식을 장만하고 손님맞이로 온종일 시간을 보내야해 스트레스 때문에 명절이 다가오기도 전에 앓아 눕는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적인 생활양식이 만들어낸 꾀병이라 아니할 수 없다. (중략) 가정주부로서 가사는 노동과는 달리 가족 사랑을 직접적으로 실천하는 성역(성역)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주부들만이 갖고 있는 고귀한 역할인데도 그것을 노동으로 인식하고 가사를 귀찮은 일로 치부한다면 가정과 사회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1997.09.15.〉

독자투고다. 투고자는 남성이다. 개인주의, 이기주의, 꾀병 등의 말들이 목에 가시라도 걸린 것처럼 거슬리고 불편하다. 1997년. 여전히 여성들은 상차림과 치우기를 하루종일 반복하고, 남성들은 TV를 보거나 술상 옆에 끼고 고스톱을 치던 시절이다. 그런 시절이니 주부들의 명절 스트레스니 며느리 증후군이니 하는 말들이 생경하게, 아니 ‘이기주의가 만들어낸 꾀병’으로 여겨질 법도 하다. 그런데, 2017년 지금, 그 풍경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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