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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언론개혁이 답이다〈이완기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ㆍ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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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9.2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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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책임은 정치가 짊어져야 한다. 전쟁의 충동을 사전에 예방할 뿐 아니라 우발적 군사충돌도 최소화하고 관리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우리가 ‘더러운 것’으로 기피하는 정치를 ‘필요 악’으로 관용하게 되는 것은 가끔씩 예술로 승화한 숭고한 정치의 모습들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워터게이트의 오명을 쓰고 물러났지만 냉전시대에 공산주의를 혐오했던 닉슨이 핑퐁외교로 중국의 문호를 개방한 것이나, 고르바초프가 수구 보수주의자들(공산주의자들)의 저항 속에서 평화롭게 페레스트로이카를 성공시킨 것, 뉴라이트 주창자였던 레이건이 고르바초프와의 정상회담으로 핵전쟁의 늪에서 빠져나온 것도 예술로 승화된 정치의 모습이며 그것은 대체로 평화를 희구하는데서 찾을 수 있다.

작금의 한반도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책임 있는 정치 지도자들의 볼썽사나운 ‘말폭탄’ 때문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두고 ‘미치광이’, ‘리틀 로켓맨’이라고 놀리며 ‘북한 완전파괴’라는 말폭탄을 던졌다. 김정은은 이에 질세라 22일 트럼프를 “불망나니, 늙다리 미치광이”로 비하하면서 “트럼프가 무엇을 생각했든 그 이상의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국 정상 간의 말폭탄은 북한 리용호 외무상의 24일(현지시간 23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절정에 달했다. 리용호는 트럼프가 ‘북한의 최고 존엄’을 건드렸다며 ‘과대망상이 겹친 정신이상자’, ‘거짓말의 왕초’, ‘악통령’ 등으로 트럼프를 맹비난하고, “북한 지도부에 대한 참수나 군사적 공격 기미를 보일 때는 가차 없는 선제행동으로 예방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트럼프, 김정은, 리용호의 말폭탄은 호전적인 깡패들이 싸움을 걸기 직전 상대를 자극하기 위해 주고받는 막말들이다. 전쟁을 부추기는 이러한 말폭탄들로 불안에 떠는 것은 애먼 한반도의 동포들이다.

9월24일 방송한 채널A 뉴스뱅크 화면 갈무리

우리 정치권은 어떠한가. 리용호 말폭탄에 여야 정치권은 일제히 ‘국제사회에 대한 협박’이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국제사회로부터 고립과 외면만 자초하는 것”(더불어민주당), “전술핵 재배치를 포함한 모든 자위권적 방어수단을 강구해 나갈 것”(자유한국당), “(대통령이) 우발적 도발가능성에 대처 해줄 것”(국민의당), “‘선제적 예방조치’가 이 땅에서 벌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바른정당) 등의 입장들은 하나같이 흥분으로 점철된 으름장들이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하더라도 그동안 대화와 평화를 강조했던 더불어민주당마저도 ‘평화’를 위한 해결책이나 ‘대화’의 끈을 놓지 않는 차분한 이성이 사라졌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치권 전반의 분위기는 자유한국당의 ‘1000만 전술핵 재배치 서명운동’에서 읽혀진다. 지난 11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내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자유한국당 차원의 ‘전술핵 재배치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홍대표는 ‘독자핵개발론’을 주장하기도 했고 NPT 탈퇴를 거론하는 등 호전적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정치인들의 ‘언어’를 전파하고 다듬는 것은 언론이다. 그런 점에서 언론 또한 전쟁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1964년 ‘통킹만 사건’에 대한 미 행정부의 조작 발표를 언론이 일찍 파헤쳤더라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베트남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거나 조기에 종결되었을 것이다. 2003년 이라크전 당시에도 이라크는 언론에 의해 세계 4대 군사강국으로 터무니없이 부풀려졌고 부시 미 대통령은 이라크를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한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하면서 전쟁으로 유인했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 조사단의 공식 조사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미국의 언론들은 전쟁 상황에서 이 거짓 정보에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CNN 등은 전쟁 상황을 비디오게임처럼 전 세계에 전파함으로써 전쟁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이에 반해 영국 BBC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등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과장․선전한 토니 블레어 정부를 비판해 영국 의회가 조사에 나서게 된 것은 대조적이다. 이로 인해 BBC는 블레어 정부의 미움을 샀고 그레그 다이크 BBC 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그는 오늘날 존경받는 언론인으로 남아 있다.

그러면 오늘 우리의 언론현실은 어떠한가. 5월10일 적폐청산을 기치로 촛불정부가 출범했지만 언론의 현실은 암담하다. 언론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보수언론과 공영방송의 부역자들은 ‘대화’와 ‘평화’는 차단하고 오로지 강경과 전쟁을 부추기는 보도행태를 거듭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나흘만인 5월14일 북한의 ‘화성-12형’ 시험발사로 도발에 직면하자, TV조선은 문 대통령이 미사일 도발에도 ‘대화’를 언급했다고 비판했고 “햇볕정책을 계승한 달빛정책”이라는 미국 언론을 인용하며 우려를 표명했다. 5월22일 통일부가 “인도적 지원, 5.24조치 해제, 금강산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 등을 대통령과 논의하겠다”는 ‘유연한 민간교류 방침’을 발표한 다음날, 보수신문들은 일제히 정부 비난에 나섰다. 조선은 “5.24조치 해제하면 천안함 장병들은 누가 죽인건가”, “개성공단 임금, 대량살상무기 개발 자금 유입”이라고 자극적인 표제를 달았고 동아는 “민간교류 하면 북한 모험적 도발 더욱 대담해질 것”, 중앙은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며 정부방침에 반대했다. MBC는 “섣부른 관계 개선 시도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를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고, TV조선도 “정부가 대화론을 꺼내는 것은 순서도 뒤바뀌었고 효과도 없다”고 어깃장을 놓았다.

6월16일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의 한반도 전략차단과 한미연합군사훈련도 축소할 수도 있다”고 한 문종인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발언을 놓고, 보수신문들은 ‘북한 주장과 닮은 구석’, ‘적전균열’ 등 색깔론으로 몰다가 급기야 문 대통령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동아는 “‘대통령 제안’이었는지 밝혀야”한다고 했고, 조선은 “문 특보의 이런 생각이 문 대통령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고 물고 늘어졌다.

7월6일 문재인 대통령은 독일에서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는 ‘한반도 평화구상’을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이산가족 상봉 재개와 남북군사회담을 제안하기도 했고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TV조선, MBC 등은 ‘북한의 ICBM 도발 이틀 만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며 비판했다. 그러면서 같은 날 뉴욕타임스가 “한반도 전쟁 가상 시나라오”를 보도하자 조중동은 호떡집에 불 난 것처럼 이를 소개하기 바빴다.

9월4일 추미애 대표가 국회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북·미 간 대화를 촉구하며 북한과 미국에 동시 특사 파견을 제안했지만 TV조선은 “북핵문제, 대화로 해결 가능한가?”라며 “미국과 북한에 특사를 파견한다고 할 때인지”라며 비아냥댔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중요한 해결책은 여전히 ‘대화’와 ‘평화’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고 한 마키아벨리의 경구를 뒤집으면 “평화야말로 정치의 연장”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호전적인 야권과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여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청산 대상인 적폐 언론들이다. 혹자는 여소야대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협치를 강조하지만 적폐와 손을 잡고 적폐를 청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기에 이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유일한 선택은 언론적폐를 하루 빨리 청산하는 일이며 그것은 공영방송 정상화부터 시작되어야 함은 불문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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