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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김사복 기사’ 유감[광주 통신] 임종수 5ㆍ18기념문화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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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9.1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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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자 문화일보 “힌츠페터 태운 택시기사, 김사복씨 외 또 있었다” 제하의 기사에 대한 다른 견해가 있다. 기사를 보면 힌츠페터씨는 5월 20일과 23일 두 차례 택시를 타고 광주를 방문했는데, 첫 방문 때는 김사복씨 명의의 택시에 20대 청년기사만 있었고 23일 두 번째 방문 때는 김사복씨는 있었지만 “청년기사가 주도적으로 운전한 것같다”고 전하고 있다. 이 기사를 보면 자칫 김사복씨 택시를 실제 운행한 사람은 청년기사이고 김사복씨는 광주 첫 방문 때 없었다고 오해할 수 있다.

김사복씨 아들 김승필씨는 “기사를 읽어 보았는데 많이 잘못되었다. 제보의 내용을 좀 확인하고 기사를 써야 했는데 아쉽다. 힌츠페터가 쓴 〈The Kwangju Uprising〉 원본을 기자분이 읽어 보셨으면 판단이 쉽게 되셨을텐데…”라고 유감의 뜻을 전해왔다. 〈The Kwangju Uprising〉의 내용을 보자.

"그날따라 세관원이 섬세하지 않았다. 밖에는 김사복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선호텔로 향하는 길에 김사복씨는 현 실상에 대한 브리핑을 해주었다." "나는 다음날 바로 광주로 향했다… 김사복은 계속 달리고 또 달렸다… 김사복은 차근히 농부들에게 물어물어 길을 찾아 광주로 들어갔다."

글을 보면 이렇게 이미 앞부분에 '김사복'이란 풀네임이 4번 등장한다. 문화일보 기사는 “20일 젊은 기사만 있었다”라고 보도했는데 〈The Kwangju Uprising〉 원본에는 “(20일) 아침 식사를 속히 마치고 우리는 시 중심에 있는 도청으로 향했다. 김사복은 그 길을 알았다."고 씌여 있다. 책의 구체적인 원문내용을 소개한다. 먼저, 한국어판 〈5ㆍ18 특파원 리포트〉(광주시민연대(대표 윤장현), 한국기자협회 공저)에 게재된 내용이다.

우리를 안내할 차를 운전하기 위해 ‘김사복’이라는 한국사람이 우리가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공항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안내로 서울시내 조선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센터에 알렸다. 당장 광주로 향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그날 밤은 조선호텔에 머물기로 하였다. (중략) 다음날 5월 20일 화요일 아침 일찍 우리는 서울을 출발했다.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으므로 우리는 조선호텔에다 개인물품 몇가지는 남겨놓고 떠났다. 출발하기 전까지 입수된 최신 정보로는 서울로 오는 길이 모두 통제되고, 계엄군이 광주로 가는 모든 길목을 장악하고 있다고 했다. 버스로는 갈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123쪽)

고속도로 입구의 ‘출입통제’라는 표지는 우리에게는 경고와도 같았다. 그러나 김사복씨는 그걸 무시한 채 텅 비어 있는 고속도로를 들어섰다. 그 길은 마치 곧 우리 앞길을 누군가 막고 나설 것같은 기묘한 기분이 들게했다. 군데군데 우회로 표지가 계속 나타났지만, 김 기사는 광주로 곧장 달렸다. 나는 차 앞자리에 앉아 카메라 촬영준비를 한 상태에서 흥미롭게 차창을 지켜보았다. (124쪽)

우리는 낯선 국도에서 광주로 가는 길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그 길은 모래와 돌과 여러 파편들로 부분부분 뒤덮여 있었고 바리케이드로 쳐져 있었다. 아마도 광주시민군이 시위하면서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짐작했다. 노련한 운전사 김사복씨는 어렵지않게 이 장애물을 통과해 길을 빠져나갔다. (125쪽)

“5ㆍ18 특파원리포트”을 수정보완한 영문판 “The Kwangju Uprising”(2000)에도 위와 같은 내용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I was in Japan on the morning of Monday, May 19, 1980. (65쪽)

Outside, our driver Kim Sa Bok was waiting for us. We greeted each other, then sped off toward the Chosun Hotel in downtown Seoul. As we drove, Kim briefed us on the situation. It was too late to set out for Kwangju-several hundred Kilometers to the south. We stayed the night at the hotel in Seoul. (66쪽)

What should we do? Kim consulted with the local farmer. We were soon on our way again. We pressed on by small side roads, heading past more paddies. (67쪽)

Before we left Kwangju, thought, I wanted to film a few more scenes. After a quick breakfast we headed for the Provincial Hall, the center of the city. Kim Sa Bok, our driver, Knew the way. (69쪽)

A Second Trip to Kwangnu - In Seoul once more, I was preparing for asecond trip to Kwangju on the early morning of Friday, May 23... (72쪽)

We were to pass through. The fact that Kim Sa Bok, our driver, was Korean was overlooked. (74쪽)

참고로 힌츠페터가 촬영한 영상을 편집하여 만든 KBS 다큐 "푸른눈의 목격자"에서도 김사복씨와 관련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힌츠페터는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3년 ‘제2회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한 자리에서 “용감한 한국인 택시기사 김사복과 헌신적으로 도와준 광주의 젊은이들이 없었다면 다큐멘터리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수상소감은 영화 〈택시운전사〉의 모티브가 됐다.

[참고자료]

〈518 특파원리포트〉 광주시민연대모임, 한국기자협회, 무등일보 출간/ 풀빛 /1997.5

한국어판과 영어판 〈Kwangju in the Eyes of the World〉을 국내에서 동시 출판하였다. 5.18당시 광주 현장을 목격했던 외신기자(8명), 국내기자(9명) 등의 취재기를 모아 편집하였는데, 외신기자 가운데 힌츠페터의 원고도 수록되어 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 등장하는 독일인 방송기자 힌츠페터의 5.18당시 활약은 이 책에 처음 소개되었다.

The Kwangju Uprising(2000, M.E.Sharpe)

‘5ㆍ18 특파원리포트’를 수정보완하여 2000년 뉴욕의 출판사에서 본격적인 영문본으로 간행하였다. 이 책은 당시 5ㆍ18을 취재했던 뉴욕타임스 헨리 스코트 스톡스 특파원과 이재의(광주시민연대모임)가 공동으로 편집하였고, 당시 광주시민연대모임 윤장현 대표(현 광주광역시장) 등이 미국 출판에 필요한 자금을 개인적으로 조달하여 빛을 보게 됐다. 이 책은 광주항쟁의 진면목을 외신기자들의 객관적인 시각에서 서방세계에 알린 최초의 책으로 미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이 지난 8월 24일 오전 시청 3층 집무실에서 인권활동가 서유진 씨와 ‘5ㆍ18특파원 리포트’ 출간 배경에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사진설명 = 아시아경제)

이 글의 필자인 임종수 씨는 광주MBC '임종수의 영화세상'을 진행했고, 광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을 지냈으며 영화카페 '광주영사모'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5ㆍ18기념문화센터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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