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처럼 된 얘기, 그러나 결코 상식으로 굳어져선 안 될 얘기들이 있다면 그 중 하나는 "종교와 정치 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가 나라의 장래부터 일상의 삶에 이르기까지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오히려 가장 많이 얘기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거야말로 ''다른 모든 것을 지배하는 최고의 예술(아리스토텔레스)''로서의 정치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다만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지극히 협애한 정치, 결과가 다른 모든 것을 용납시키는 정치술과 정치공학으로서의 정치 이야기일 것이다. 그 같은 정치 담론은 그 무성함이 범람을 걱정해야 할 정도이지만 그 풍요는 빈곤의 이면일 뿐이다. 그건 정치라는 이름의 반(反)정치일 뿐이며, 정치의 이름으로 정치를 죽이는 것이다.

공자가 말했듯 정(正)으로서의 정치, 현재를 바꾸고 미래를 좌우하는 정치에 과잉이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그것의 과잉보다는 결여로 인한 것이다. 과잉과 결핍, 그것은 우리 정치의 음과 양이다. 과잉은 결핍을 낳고, 결핍은 과잉을 부른다.

이제 우리는 바야흐로 정치의 가장 뜨거운 순간을 맞고 있다. 선거 중의 선거이며 한 사회의 정초(定礎)로서의 대통령 선거는 주기적으로 주어지는, 무엇보다 주(主)로서의 민(民)을 확인하는 기회다.

선거는, 특히 대선은 정치와 민주주의의 갱생의 기회다. 그것은 한 사회의 소멸하는 과거의 마지막이면서 도래하는 미래의 시작이다. 어제의 결산이자 내일의 서막이다.

민주주의를 하나의 완성된 제도, 기성품이 아닌 성장 진화하는 ''살아 있는 민주주의''로 이해한다면 선거는 민주주의의 뼈와 근육을 새롭게 하는 수혈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정치의 왜곡의 덫은 선거 또한 피해가지 않는다. 정치가 빠진 재난과 연옥의 늪은 선거도 그 제물로 삼키고 있다. 아니 오히려 가장 극명하게 정치의 왜곡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야말로 선거다.

주인으로서의 민(民)들은 선거에서 구경꾼으로 물러나 있다. 그 자신이 임명한 하인들에 의해 대상화되는 기이한 전도 현상이 선거판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사육제에서 국민들의 열광과 무지는 서로 협력해 거기에 참여할수록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역설을 빚고 있다.

이 갱생과 미래로의 축제에서 국민이 들뜬 구경꾼이 아닌 주인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하룻밤의 떠들썩한 주연(酒宴)이 아닌 장엄한 부활제가 되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이 축제에는 가면과 술이 필요치 않다. 대신 혜안과 자기 학습, 권리와 함께 진지한 의무감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에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쳐 내는 마법이 필요치 않다. 혹여 마법과 기적이 있다면 그건 지리한 논쟁과 학습으로만 얻어질 뿐이다.

어떤 나라든 결국 국민의 수준을 넘어서는 대통령을 갖지 못한다. 대통령의 수준은 그 자신의 인격과 역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떤 대통령이냐를 만들어가고 완성하는 것은 바로 국민들이며 주인의 학습과 성찰만이 거기에 값하는 대통령을 만들어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대선을 하나의 시험이라고 한다면 진정 시험받고 있는 건 후보들이 아니며 누구보다 우리 자신이다. 선거는 후보들의 자격을 묻기 이전에 국민의 자격을 묻는 것이며, 나라와 민주주의의 주인될 자격을 묻는 것이다. 답안을 내는 것도 후보들이 아니며 우리 자신이다.

그러므로 이 선거는 후보 간의 선택 이전에 우리 자신에 대한 선택이다. 그건 자기 마음속의 이성과 무지 간의 선택이며, 이기심과 공익 간의 선택이다. 우리 자신 속의 우중(愚衆)과 공중 간에 무엇이 될 것인지를 스스로 뽑는 것이다. 바라바 대신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우중이 아닌, 우리 자신이 헌법기관이며 유능한 시민임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무력한 시민이 아닌 전능한 주재자로서의 국민임을 입증하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민주주의의 문지기에게 주민증이 아닌 시민증을 보여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선거의 진정한 승자와 패자 또한 후보가 아닌 국민들이다. 진정한 승리는 자신이 선택한 후보의 승리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을 주인과 시민으로 입증할 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즐기자, 이 즐거운 축제를. 다만 백가쟁명으로써, 공허한 사육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축제로, 우리 사회 갱생의 부흥회로 만들어보자. 그리하여 우리 자신이 자격 있는 주인임을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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