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연재 내인생의 취재기 / 제작기
최순실이 불러낸 30년 전의 기억[내 인생의 취재기] 진상, 강제징집과 녹화사업
〈안기석 전 월간 기자 (현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
  • 관리자
  • 승인 2017.01.25 12:38
  • 댓글 0

1.

참 묘하다. 아니 괴이하다. 2016년 말과 2017년 초를 보내면서 ‘과거의 어두운 시간들’이 여과 없이 내 삶에 침투해 들어오면서 추억과 전망을 모두 삼켜버렸다. 기체 같은 미래와 액체 같은 현재와 달리 고체 같은 과거는 그냥 유물처럼 보관되어 있거나 폐쇄된 길가의 돌멩이처럼 방치되어 있어야 하는데 누가 던지는지 그 무거운 돌덩이들이 휙휙 날아드는 것이다.

바둑 프로 9단 이세돌을 가볍게 제압한 인공지능 알파고의 무대 등장으로 트랜스휴먼시대에 ‘인간과 기계가 펼치는 연극’을 어떻게 감상할 것인지 사치스런 고민을 하던 중에 평소 듣지도 보지도 못한 한 여인이 나타나 그 무대를 모두 망쳐버렸다. 그 여인은 우리나라 매스컴의 지면과 화면을 온통 독차지하더니 급기야 옛 전제 왕조의 노복 같은 조연이 따라 나와 ‘블랙리스트’라는 ‘저주의 주문’을 환기시켰다.

이 저주의 주문은 독재 권력과 독점적인 돈의 욕망들이 질주하기 위해서 분열의 길과 억압의 포장을 만들 때 흔히 사용하던 것이다. ‘금서 목록, 금지 가요, 불순분자와 단체’ 등 이미 지나간 블랙리스트의 유령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그 유령이 오래전 월간 <신동아>에 실었던 ‘진상,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의 취재 기억을 다시 되살릴 줄이야.

2.

1988년 어느 무렵, 고 박권상(<동아일보> 주간 역임) 선배의 집에 청탁한 원고를 받으러 갔다가 질문을 받았다. “녹화사업을 들어봤는가?” 전두환 정권 시절에 이른바 운동권 대학생들을 강제 징집해서 이른바 ‘녹화사업’, 즉 ‘빨간 색’의 생각을 ‘파란 색’으로 바꾸어 프락치로 활용했다는 것이었다.

귀가 솔깃했다. 회사로 돌아와 이곳저곳에 전화를 했지만 녹화사업에 대해 자신 있게 증언을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위원회 쪽에 전화를 했더니 강제징집에 대한 보고서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곧바로 달려가 그 보고서를 읽어본 결과 강제징집 당한 대학생들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한 대학생이 5명이나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군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죽음을 당했던 것일까. ‘녹화사업’과는 관련이 없는 것일까?

취재 기안서에 올렸더니 데스크가 취재 지시를 내리면서 강제징집 당했던 대학생 중 녹화사업에 동원된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필히 확보할 것을 주문했다. 먼저 의문사를 당한 대학생들의 유족들을 만났다. 녹화사업에 대한 어떤 증언도 확보할 수 없었다. 이런 저런 재야단체와 사람들한테 계속 수소문했더니 의외의 증언을 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군법무사로 일했던 사람으로부터 녹화사업의 실체에 대한 증언을 얻을 수 있었다. 실명을 밝히지 않겠다는 확신을 준 뒤 자세한 증언을 들었다. 군정보기관이 강제 징집됐거나 자진 입대한 운동권 대학생들에 대한 인적 정보를 이용해 ‘녹화사업’이라는 특별교육(기합과 설득 병행)을 시킨 후 그 사업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특별 휴가를 준 후 프락치 활동을 시킨다는 것이었다. 프락치 활동은 주로 운동권에 있는 친구들의 동향을 탐지해 세운상가 등 비밀아지트에 상주하던 정보기관 요원들에게 보고하는 방식이었다.

이제는 녹화사업을 받고 실제 프락치 활동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의 증언을 확보하는 일만 남았다. 전두환 정권 당시 강제 징집되거나 뭔가 석연치 않게 자진 입대했다가 제대한 운동권 출신 대학생들을 수소문했다. 여러 명을 접촉했지만 증언을 얻을 수 없었다. 원고 마감을 앞두고 마침내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한 사람으로부터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아주 자세한 증언을 고통스럽게 진술했다. ‘녹화사업’의 결과 생각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생존의 위협 때문에 친구의 동향을 밀고해야 했던 고통스러운 기억을 들추어내주었다. 드디어 원고를 완성할 수 있었다. 데스크는 어떤 취재 보완도 요구하지 않고 게재한 뒤 <신동아> 표지에 톱으로 올렸다.

3.

나는 취재와 작성과 게재로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을 마무리했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아직도 그 실명을 밝힐 수 없지만 증언자 중 한 사람은 종교인이 되었으며 또 다른 증언자들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가급적 인적 사항을 노출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한 증언자는 자기가 활동하던 단체에서 내가 쓴 기사의 당사자라는 소문이 나서 왕따를 당하는 곤혹을 치른 것으로 전해 들었다.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대한민국은 국민 개개인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보호해주고 존중해주면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여 사적 이익을 때로는 절제해야 하는 민주공화국이다. 주인인 국민이 정치적 이념과 경제적 수준에 따라 차별 대우 받거나 편가르기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더구나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의 도구로 악용한 사례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한 범죄로 기억되어 마땅하다. 문화와 예술뿐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삶 전체에 블랙리스트라는 유령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저작권자 © 자유언론실천재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리자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