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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은 반역의 땅”…“마, 그건 편집했어야지!”[내 인생의 제작기] 전두환 5공 시절, MBC R의 작은 해프닝 하나
〈김평호 전 MBC PD (현 단국대 교수)〉
  • 관리자
  • 승인 2017.01.1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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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제작기’라 하기엔 이건 작은 이야기다. 큰 이야기 사이에 끼워 넘어갈 법한 조촐한 술안주 정도의 이야기.

“김평호 씨, 이리 들어와 봐.” 라디오 편성부장이 부른다.
“네?”
“전화가 왔어.”
“네?”
“지난 번 합천 출장 다녀왔지?”
“네!”
“군수한테서.”
“네?”
“왜 그랬냐고 묻던데, 한 번 들어볼래?”
“네? 네!”

이게 뭔 일이지, 속으로 중얼거렸다.
물론 위의 대사는 기억을 더듬어 정리한 것이지 정확한 인용은 아니다. 대략 1984년, 지금부터 무려 33년 전 이야기. 문화방송에 피디로 입사한 지 만 2년 반쯤 지났을 무렵, 그해 늦은 봄이나 초여름쯤이었을 것이다. 해인사 사하촌에서, 또 합천 시내에서 반팔 남방 입고 맥주 한 잔 했던 기억이 나는 것으로 보아……. 그리고 더 분명하게는 그즈음 88 고속도로 개통을 앞두고 그 도로가 통과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했었으니까.

그 시절 나는 문화방송 라디오 편성부에서 매주 일요일 아침 방송되는 지역 탐방 프로그램을 취재/제작하고 있었다. 프로그램 이름은 ‘다큐멘터리-한국기행’. 합천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방송 되고 나서 편성부장이 나를 부른 것이었다. 합천군에서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이유는 그 프로그램 중에 “합천이 원래부터 반역의 땅……” 운운하는 인터뷰가 있었는데, 그런 내용을 지금 때가 어느 땐데 방송할 수가 있느냐는 이야기였다.
그때 대통령이 누구인가, 바로 그 합천 출신, 전두환. 그가 대통령을 해먹던 시절 아닌가.

합천, 반역, 편집?

“그건 제가 한 이야기 아니라, 합천 향토 사학자 분께서 하신……”
“마, 그래도 그렇지, 그건 편집을 했어야지.”
“네? 왜요?”
“몰라서 묻냐?”
“아니, 그건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고…… 또 내가 억지로 끼워 넣은 것도 아니고……”
이후 이런 저런 이야기 몇 마디 더 하다가, 부장 왈.
“…… 알았어, 가 봐.”

대략 이런 식의 이야기가 오가다 거기서 끝이 났고 더 이상 아무런 일도 없었다. 또 당시 인터뷰 해 주신 분에게도 무슨 일이 생겼다는 후속 연락은 없었다. 하긴 이게 무슨 대단한 이야기겠는가. 내가 그 인터뷰를 일부러 넣은 것도 아니고, 또 무슨 의도를 가지고 집어넣은 것도 아니니. 아닌 게 아니라 ‘다큐멘터리-한국기행’ 반역의 땅 합천 프로그램 인터뷰 에피소드는 함께 작업한 스튜디오 제작진들에게는 5공 시절 술자리의 조촐한 안주거리, 웃음거리가 되었다.
전두환의 고향인 합천을 그가 서슬 퍼런 독재자로 있던 5공 시절에 대놓고 ‘반역의 땅’이라 부르다니 하면서. 아마 라디오 프로그램이었으니까 그랬지 텔레비전 방송이었다면 상황이 좀 더 심각하게 전개되지 않았을까?

합천과 정인홍

기왕 말이 났으니 사족으로 ‘반역의 땅 합천 이야기’ 내력를 잠깐 풀어보자면……
이런 ‘낙인찍기’는 서인, 즉 후에 노론이라 불리는 자들이 붙여 주었다. 합천이 속해 있는 경상우도-한양에서 내려다볼 때 안동 등지는 왼쪽이고 합천, 진주 등은 오른쪽이라는 의미에서-는 조선 중기 이후 근 300여 년 동안 호남과 마찬가지로 조선의 기득권 세력, 즉 노론에 의해 철저하게 차별과 배척을 받았다.

배경은 이렇다. 인조반정 이후, 서슬 퍼런 서인들에 의해 광해군 시절 원로 실세였던 합천의 정인홍은 87세의 나이에 참수 당했다. 그뿐 아니라 정인홍이 남명의 수제자라는 이유로, 남명은 역적들의 배후 주동자로, 남명학파는 불온한 집단으로 낙인찍혔다. 한편 얼마 되지 않아 광해군 복위사건이 일어나자 합천은 아예 역적의 고향이라 불리게 되었다. 정인홍의 처형 그리고 광해군 복위사건을 겪으면서 경상우도는 서인과 그 후예인 노론의 견제로 중앙 정계에서 소외되기 시작한다. 학문적으로도 남명과 그의 제자들은 퇴계, 율곡 등에 밀려 조선 유학사의 마이너 정도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그 곳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남명의 사상을 이어받아 임진왜란 때 가장 많은 의병장을 배출한 지역 중 하나이고, 그 전통은 또 3.1 운동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런 합천의 내력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전두환이 역설적으로 제 고향 합천에 먹칠을 한 자라 아니할 수 없을 터, 그야 말로 역도가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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