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산하(再造山河)’와 ‘재조지은(再造之恩)’은 비슷한 어감이면서도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나라를 다시 만들다’는 뜻의 ‘재조산하’는 임진왜란 당시 실의에 빠져있던 서애 류성룡에게

충무공 이순신이 적어 준 글귀다.

폐허가 된 나라를 다시 만들지 않으면 죽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던 충신들의 마음이 절박하다.

‘자율’과 ‘의지’의 언어다.

‘재조지은(再造之恩)’은 다 망하게 된 나라를 구해준 대국의 은혜를 뜻한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구해 준 명나라의 은혜를 잊으면 안 된다는 노론의 금과옥조였다.

의타심과 굴종이 물씬 배어나는 ‘타율’의 언어다.

노론 선비들이 그토록 의리가 깊어 명나라에 머리를 조아린 것이 결코 아니다.

‘현명한 외교’ 차원은 더더욱 아니다.

대국의 위세를 빌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방편의 하나였을 뿐이다.

정작 명나라가 망한 뒤에도 ‘재조지은’이 질기게 생명을 이어 간 이유다.

그 상징물이 숭인동 ‘동관묘(東關廟)’, 충북 괴산 화양리의 ‘만동묘(萬東廟)’다.

광복 62년, 정부 수립 59년인 2017년에 더욱 위세를 떨치는 현대판 ‘재조지은’의 상징물은 맥아더동상과 거리에 나부끼는 성조기다.

태극기는 당연히 재조산하의 몫이어야 하는데 이것까지 어버이연합류들이 독점하고 있는 현실이 극도의 부조화다.

성조기에 굴종하는 태극기로 연출되는 현실은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올해, 재조산하와 재조지은이 다시 한 번 한반도의 명운을 걸고 격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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