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이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섰다. 5% 지지율의 ‘피의자 대통령’과 95%의 국민이 미증유의 전쟁을 치러야 할 상황에 처했다. 국가 최고 권력자가 대놓고 법을 무시하며 법 위에 군림하려 한다면 그것은 국민에게 피를 요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하고 있다. 혁명이 아니고서는 이 전대미문의 국가재난을 돌파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 땅에서 더 이상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되며, 그래서 혁명은 무혈혁명이어야 한다. 식지 않는 민심의 열기만이 피 없는 무혈혁명에 성공할 수 있다. 거기에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내년 대선판도를 의식한 정파적 이해도 당분간 접어두어야 한다. 언론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이다.

지난 20일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과 함께 뇌물수수에 공모했다는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 동안 국민들로부터 권좌에서 물러나라는 압박을 받아왔던 박근혜는 이제 국정농단의 범죄행위를 공모한 주범으로서 법적으로 탄핵소추가 가능한 피의자 신분이 됐다.

그러나 검찰 발표가 있던 당일 박근혜는 청와대 대변인의 입을 빌려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자신에 대한 검찰 조사도 수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박근혜의 변호인 유영하는 “검찰이 대통령을 공범으로 기재한 부분은 어느 하나도 인정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대통령의 혐의를 99%까지 입증할 수 있다는 검찰 발표에 대해 “증거를 엄밀히 따져보지도 않고 상상과 추축을 거듭한 뒤 그에 근거해 환상의 집을 지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재단설립과 모금도 “강제성이 없었으며 국정수행의 일환이었다”고 강변했다.

박근혜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대통령의 권한을 사인인 최순실 일가에 부여해 나라 곳곳에서 권력형 부정부패를 획책하고 실행한 국정농단의 주범이다. 범죄의 징후는 교육, 문화, 체육, 의료, 부동산 등 온갖 분야에서 나타났다. 청와대, 교육부, 문체부, 보건복지부 등 공조직이 처참하게 붕괴됐고 그 속에서 재벌기업들과의 은밀한 뒷거래가 이루어졌다. 앞으로 어디에서 또 다른 비리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재임기간 내내 국민을 위해 희생하면서 내 모든 것을 바친다는 각오로 한 치 사심 없이 살아왔다”고 말했다. 이정도면 자기도취가 병적인 수준이다. 법 위의 권력으로 나라를 말아먹었던 아버지처럼 박근혜는 국정농단의 범죄를 순수한 애국 행위라며 자기기만에 빠져있다.

박근혜는 2차 대국민담화에서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며 울먹였다. 돌이켜보면, 그 울먹임은 국민에 대한 미안함과 반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돼지들에 굴복한 것에 대한 굴욕감과 억울함과 그에 따른 오기의 표출이었다. 계엄을 선포하고 군홧발로 짓밟았던 아버지 박정희의 방식을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한 회한의 토로였다. 지난 10월 24일 박근혜가 정국수습용으로 ‘개헌’을 언급했던 것을 두고 최순실이 ‘계엄’을 주문했는데 박근혜가 ‘개헌’으로 잘못 알아들었다는 세간의 우스갯소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이다.

그래서일까. “이러려고...” 발언 후, “그러지 않으려”는 반역의 조치들이 연달아 나오고 있다. 박근혜는 11월 8일 정세균 국회의장을 찾아 국회에 총리추천을 요청한 후 공격적 자세로 돌변했다.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친박 측근들과 함께 100만 촛불과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와 통화하고, 부산의 엘시티 비리에 대한 수사를 지시하고, 정부부처의 인사를 강행했다. “모든 것을 중단하고 내려오라”는 국민의 명령에 정면으로 맞서는 모습이다. 박사모, 어버이연합 등 극우세력들의 반대시위를 추동해 편을 가르고 국론분열을 야기함으로써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가 편파적이라며 수사를 거부하는 것은 “탄핵할 테면 해보라”는 배짱전술에 다름 아니다.

박근혜의 국정농단도 문제지만 국민이 용서하고 참아내기 어려운 것은 그의 뻔뻔스런 거짓말과 말바꾸기다. 최순실의 연설문 수정에 대해 박근혜는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했지만, 검찰 발표에서는 올해 4월까지 청와대 문서를 최순실에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불과 얼마 전까지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라고 했던 박근혜는 검찰조사에 응하지도 않았고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가 나오자 아예 검찰조사를 안 받겠다고 말을 바꿨다. 지난 21일에는 자신이 국회에 제안했던 총리추천 요청도 철회할 뜻을 보였다. 이러한 박근혜의 거짓말과 말바꾸기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의 선거부정, 선거공약 폐기, 세월호 유가족들과의 약속 무시 등 그가 임기 중에 국민들 앞에서 했던 허언과 식언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제 그는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문제는 지금 펼쳐지고 있는 국가의 재난이 박근혜와 그 측근들 몇몇에 대한 심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그 권력에 동조한 공조직, 범죄사실을 인지하고도 침묵했던 검찰, 기업의 치부를 감추거나 이권을 챙기려 했던 재벌, 그리고 그 속에서 부패한 권력을 비호하고 애써 외면했던 언론 등의 행위가 철저하게 밝혀지지 않는 한, 유사한 사건은 재발될 것이다. 천박하고 무지한 권력을 앞세워 협잡을 일삼는 무리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책임은 기회주의 언론에 있다. 한겨레가 지난 9월 20일 첫 보도를 시작으로 최순실을 집요하게 물고, 10월 24일 JTBC가 최순실의 태블릿 PC 보도로 다음 날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끌어내기까지,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 사건을 은폐ㆍ왜곡ㆍ축소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기회주의 언론들은 10월 25일 박근혜의 대국민담화가 발표되자 특별팀을 꾸리느라 부산을 떨었다. 먹이를 찾은 하이에나 언론들이 죽은 권력을 물어뜯으며 언론의 시늉을 하고 있지만 불과 한 달 전까지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국민이 알고 있다.

그래서다. 국정농단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여야 합의로 통과된 특검은 그 권력형 범죄집단 주변에서 자리와 이권을 챙기며 부패권력을 비호했던 부역 언론인들도 철저히 밝혀 철퇴를 가해야 한다. 특히 권력의 범죄행위에 침묵하고, 진실규명을 방해했던 공영방송 KBS와 MBC의 부역 언론인들을 청산하지 않고서는 이 더러운 권언유착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고 국민은 개ㆍ돼지의 처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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