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아버지가 주신 소중한 애장품이 있다. 일본 가와데쇼보(河出書房)에서 1967년에 펴낸 〈세계미술전집〉 두 권이다. 모두 24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1권 〈다빈치, 라파엘로〉 편과 9권 〈코로, 밀레, 쿠르베〉 편을 아버지가 어린 나에게 사 주셨다. 당시 우리나라의 출판 환경으로는 발행이 어려웠던 고품질의 화집이어서 어린 나는 볼 때마다 신비의 세계로 빨려드는 듯 매료되었다. 넉넉하지 않았던 살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큰마음 먹고 이 화집을 사셨을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화집 속의 그림들에 기대어 나의 아버지 이의직 동아투위 위원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다.

햇살처럼 환하고 따뜻한 아버지의 사랑

밀레의 〈양치는 소녀〉는 예나 지금이나 내가 매우 좋아하는 그림이다. 그림에서 양치기 소녀는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기도를 드리고 있다. 해는 구름에 가렸지만, 그 사이로 뻗어 나오는 햇살이 화사하고 따뜻하다. 기도하는 소녀와 양떼는 다가오는 어둠에 묻히고 있으나, 그 등과 어깨에 떨어지는 황금빛 햇살이 찬란하기 그지없다. 이 햇살은 하루의 수고에 대한 위로이자 내일에 대한 약속이다. 이 햇살로부터 소녀를 향한 신의 따뜻한 사랑을 선명히 느낄 수 있다.

나는 저 햇살에 스며든 신의 사랑으로부터 내 아버지의 사랑을 떠올린다. 내게 아버지의 사랑은 저 햇살처럼 환하고 따뜻한 것이었다. 미남이셨던 아버지. 그 얼굴에 선량한 표정으로 짓는 미소는 아들인 내게도 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표정만 밝고 따뜻한 게 아니라 마음까지 밝고 따뜻하셨다. 내가 당신의 아들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버지는 내가 살면서 만난 사람 가운데 지금껏 가장 선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쯤 되었을 때다. 어느 날 저녁 아버지가 나보다 한두 살 어려보이는, 누추한 행색의 소년 하나를 데리고 오셨다. 독서대가 달려 있는 조그만 접이식 책상을 파는 아이였다. 추운 밤 길거리에서 떨고 있는 아이를 보고는 안쓰러운 마음에 데리고 온 것이었다. 어머니에게 부탁해 따뜻한 밥을 지어 먹이고는 아이가 가지고 있던 책상 세 개를 몽땅 사셨다. 아이를 배웅하고 돌아온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같은 나이 또래의 자녀를 둔 아비로서 그 아이의 처지가 그렇게 마음 아팠던 것이다.

아버지는 아이들을 매우 사랑하셨다. 길 가다가도 아이들을 보면 다정하게 안아주곤 하셨다. 콧물을 흘리든 땟국이 배어 있든 상관하지 않으셨다. 모든 아이들을 다 예뻐하셨고, 당신의 자녀들인 우리 삼남매를 지극히 사랑하셨다. 귀가해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이 어린 우리들을 껴안고 뽀뽀하고 깨무는 일이었다.

술을 좋아하셨는데, 술을 드시면 더욱 유쾌해지는 분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귀가하면 집에서는 곧잘 노래 한마당이 펼쳐지곤 했다. 아버지는 기타로 반주를 하고 우리들은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막내 여동생이 피아노를 배운 다음부터는 아버지의 기타 소리에 여동생의 피아노 소리가 더해져 우리 가족의 노래판이 더욱 흥겨워졌다.

‘엄부자모(嚴父慈母)’라는 말이 있지만, 자라는 동안 나는 아버지를 엄한 존재로 느껴본 적이 없다. 내가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아버지는 언성을 높이거나 매를 들지 않으셨다. 불러 앉히고는 대화를 하셨다. 대화를 해도 아버지 스스로 말씀을 많이 하지 않으셨다. 주로 내 이야기를 들어 주셨다. 이것저것 물어 보시고 내 생각을 하나하나 이해하려고 하셨다. 아버지 앞에서 속이야기를 다 꺼내 놓다 보면 스스로의 잘못에 대해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또 위로를 받아 크게 안심이 되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내 편이었고 든든한 나의 버팀목이었다. 세상에 ‘아빠’라는 단어보다 나에게 더 따뜻하고 든든하고 힘이 되는 단어는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을 것이다. 당시 남산에 있던 어린이회관 미술부 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가다가 아버지가 다니시던 동아일보사에 들렀다. 넉넉하지는 않았어도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부모님은 어린이회관 미술부 활동을 비롯해 특기를 계발할 수 있는 활동을 열성껏 지원해 주셨다. 그 날 수업을 마치고 버스를 탔다가 무슨 마음에서인지 아버지 회사 앞에 내렸다. 아버지는 일하다 말고 반갑게 나를 맞아주셨다.

그 날 나는 아버지의 안내로 신문사 이곳저곳을 돌아볼 수 있었다. 편집국에서 시사만평가 백인수 화백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본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로부터 아들이 미술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백 화백은 ‘쿨하게’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도록 허락해 주셨다. 공무국에서 조판하는 모습도 재미있게 보았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윤전기도 나를 흥분하게 했다. 모든 게 다 좋았지만, 바쁜 와중에도 아버지가 불쑥 찾아온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신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친절하고 자상하게 설명해주신 게 제일 좋았다. 지금도 내 마음에는 아버지의 그 햇살 같은 표정과 온기가 남아 있다.

밀레와 동시대의 화가인 쿠르베는 사냥을 좋아했다. 그는 사냥꾼의 눈매로 동물의 표정과 동작을 포착하고 이를 화포에 꼼꼼히 묘사했다. 그래서 쿠르베가 그린 동물들은 아주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물론 그렇게 사냥꾼의 시선으로 그리다 보니 그림의 동물과 화가 사이에서는 늘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명을 놓고 다투는 관계에서 날 선 긴장이 없을 수 없다.

쿠르베의 〈피신 중인 겨울 사슴〉은 수사슴 한 마리가 경계를 서고 나머지 사슴 두 마리가 그 보호 아래 체온을 나누며 웅크린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다. 경계를 서는 수사슴은 지금 매우 예민한 상태다. 바스락 하는 소리라도 들었는지 귀를 쫑긋한다. 혹시 천적이나 사냥꾼이 나타날까봐 걱정하는 그를 사냥꾼인 화가가 지금 등 뒤에서 바라보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경계를 해도 때로 피할 수 없는 위험이 다가오는 법이다. 저렇게 아름다운 자연 속에 저렇게 아름다운 자태로 서 있지만, 지금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붓 대신 총을 잡는다면 사슴으로서는 속수무책이다. 운명은 그런 것이다. 운명은 때로 나를 지켜주고 운명은 때로 나를 버린다. 운명의 그런 변덕과 관계없이 꿋꿋하게 자신과 가족을 지키려는 저 사슴이 볼수록 아름답다.

아버지는 1975년 3월 동아일보사에서 쫓겨나셨다. 병든 아내와 어린 삼남매를 먹여 살려야 하는 일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모진 현실 앞에서 아버지가 느낀 불안과 두려움, 외로움, 막중한 책임감이 그림의 저 사슴과 결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부단히 노력하셨다. 하지만 노력만으로는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슴처럼 착하고 온유하셨던 아버지, 당시 아버지가 느끼셨을 외로움과 고통의 무게가 얼마나 컸을까?

1975년 3월 어느 날, 아버지를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동아일보사의 출판국장으로 기억한다. 아버지는 출판부 부장 대우로 있다가 그 며칠 전에 해임되셨는데, 바로 아버지의 직속 상사가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두 분은 한참 이야기를 나누셨다. 손님이 돌아간 뒤 아버지가 어머니와 나를 부르셨다. 당시 나는 중학교 2학년생이었는데, 집안에 일이 있으면 아버지는 어머니와 의논하는 자리에 장남인 나를 부르시곤 했다. 아버지는 왜 직속 상사가 집으로 찾아왔는지 이야기하셨다.

1975년 3월 8일 동아일보사는 경비 절감을 이유로 아버지가 속해 있던 출판부를 비롯해 기획부, 과학부, 심의실 네 부서를 폐지하고 기자 및 사원 18명을 해임했다. 자유언론 실천 선언을 내고 정권과 대립해온 기자들은 이 조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세 알아차렸다. 경영상의 필요에 의한 구조 조정이 아니라, 자유언론 운동을 벌이는 기자들을 제압하고 통제하기 위한 본격적인 첫 행보였다. 기자들은 경비상의 문제 때문이라면 스스로 봉급을 깎을 터이니 해임을 철회하라며 농성을 벌였다. 그 상황에서 아버지의 상사가 아버지를 찾아온 것이다.

아버지는, 집에 찾아온 상사가 아버지에게 제발 농성장에 나가지 말라고 간청했다고 하셨다. 시간이 지나 사태가 잦아들면 회사에서 해임된 이들 가운데 아버지와 같은 이들을 우선적으로 복직시킬 예정인데, 젊은 기자들의 농성장에 나가 회사 눈 밖에 날 일을 왜 하느냐는 것이었다. 관리자 위치의 부서장인 한편 운동의 주동자가 아니었던 아버지를 회유하려 한 것이다. 사실 아버지도 당신이 회사가 휘두르는 칼의 직접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분의 말이 아버지를 더욱 자극했던 것 같다. 그 날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가 계속 농성장에 나갈 것이고, 그로 인해 동아일보사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중시하셨다. 독재 권력에 맞서 자유언론을 부르짖으며 투쟁하는 젊은 기자들을 그런 식으로 제압하려는 회사에 크게 실망하셨다. 또 그렇게 성실히 일해 왔던 당신을 회사가 필요에 따라 장기판 말 다루듯 도구적으로 취급하는 데 대해서도 분개하셨다. 아버지는 기자들 사이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큰 희생이 있을지 그때 충분히 예상하셨다. 마음과 피가 따뜻했던 아버지는 투쟁하는 후배들과 함께 거리로 나앉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는 해직 언론인이 되셨다.

해직 뒤 아버지는 동아투위 모임에 나가는 한편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하셨다. 집안 살림은 어려웠다. 모아 둔 돈이 없었을 뿐더러 오히려 적지 않은 빚이 있었다. 하지만 해직 언론인이라는 족쇄로 인해 아버지의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쫓겨난 기자 대부분이 취직을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가 계속 들려왔다. 정권 차원의 방해가 많았다. 서슬 퍼런 유신 시대에 해직 기자를 고용해 무슨 불이익을 당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기업과 사람들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히 아버지는 작은 출판사에 주간으로 취직이 되셨다. 낮에는 출판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집에서 번역 일을 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번역 일은 이전부터 짬짬이 하시던 것이지만, 이제 더욱 절실히 해야 할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애쓰던 것도 잠시, 이듬해 아버지는 폐암 진단을 받으셨다. 어머니와 어린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청천벽력이었다. 아버지도 앞이 깜깜하셨을 것이다. 해직 뒤 가까스로 집안 경체를 추슬러 가는 와중에 중병에 걸렸으니 얼마나 허탈하셨을까. 심장병으로 고생하는 아내에게 아직 다 갚지 못한 빚과 어린 자식들을 남기고 간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싫은 일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신앙생활에 열심이었던 어머니는 아버지를 교회로 인도하셨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따라 예배도 드리고 새벽기도에도 나가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나에게 한탄하듯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오늘 새벽에 아빠가 기도하는 걸 곁에서 몰래 엿들었어. 병을 고치게 해 달라고, 폐암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기도하는 내내 들어보니 윤경이(막내 여동생) 시력이 좋지 않으니 눈이 좋아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너희들 항상 건강하게 잘 지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더구나. 끝내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기도도 하지 않으시더구나.”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다. 교회에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도하는 일이 생소하기도 했겠지만, 신 앞에 기도한다면서 스스로를 위해 무언가를 구한다는 게 아버지에게는 그렇게 쑥스럽고 계면쩍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기도 제목은 다 제쳐두고 오로지 아버지의 쾌유만을 위해 기도하시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 기도를 듣고는 맥이 다 풀려버린 듯했다. 어쨌거나 아버지는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성실히 나가셨다. 석 달밖에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일 년여를 더 살 수 있었던 것은 두 분 사이의 깊은 사랑과 신앙의 힘이 한몫했을 것이다.

병중에도 아버지는 열심히 일을 하셨다. 병이 심해져 출판사도 나가지 못하게 되고 온몸에 암 세포가 퍼져 직접 만년필을 들 수 없게 되었을 때는 내가 아버지의 구술을 받아 번역 원고지를 채웠다. 아버지는 그렇게 해서라도 돈을 버셔야 했다. 당신의 구술을 받아 원고지를 채워나가는 고교 1년생 아들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내가 아버지를 업고 방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자리를 옮겨 드렸다. 수척해지신 아버지는 전혀 무겁지 않았다. 새 이부자리에 아버지를 뉘어드리자 아버지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우리 헌이 다 컸구나! 이제 내가 안심해도 되겠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어려 있었다. 아들이 이제는 어린아이만은 아니라고 느끼신 듯했다. 그 순간 나는 나이와 관계없이 이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안의 기둥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아일보사의 불의를 보고 자진 해직당한 아버지

〈오르낭의 매장〉은 쿠르베의 최고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현재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작품은 사실주의 미술의 선언서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원제가 〈군중도, 오르낭에서의 매장의 역사적 평가(Painting of Human Figures, Historical Account of a Burial at Ornans)〉인데, 평범한 시골 사람들을 위대한 역사화의 주인공처럼 그려 당시 미술애호가들에게 큰 충격을 준 그림이다. 범부들을 역사화의 주인공으로 그린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역사화는 전통적으로 역사적, 종교적, 신화적 영웅이나 위인들의 드라마를 그린 그림을 말한다. 그러나 이 그림을 마주한 당시 프랑스 관객들은 자신들이 아는, 혹은 기릴 만한 영웅이 그림에 단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혹했다. 주제 자체가 시골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농부의 장례식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분노를 금치 못했다. 고인이 뭔가 위대한 일을 하다 죽은 것도 아니고, 장례식 중에 종교적인 기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이렇듯 웅장한 역사화 형식으로 그려 놓았으니 배신감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쿠르베는 영웅의 죽음이나 평범한 농부의 죽음이나 모두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그림을 통해 모든 인간은 다 존엄하며, 역사와 사회를 움직이는 진정한 주체는 권력자나 성인, 영웅들이 아니라 평범한 민초임을 강조하고 싶었다. 일개 농부의 죽음이라도 그것은 영웅의 죽음과 차이가 없는 숭고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1977년 10월 7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게는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사건이었다. 그 상실감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날, 내가 느낀 허전함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어떤 영웅의 죽음도 나에게 이런 충격을 줄 수 없었다. 다른 모든 이에게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소시민 한 사람이 사라져간 것에 불과할지 몰라도 나에게는 그야말로 우주가 종말을 고하는 사건이었다. 어느 누군들 사랑하는 부모를 잃고 이런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쿠르베는 사람들의 그런 심정을 잘 이해했기에 평범한 농부의 장례식을 저토록 숭고한 장면으로 묘사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혹 아직껏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다 용서하고 가시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은 다 용서할 수 있지만, 단 한 사람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하셨다.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선한 아버지도 도저히 박정희 대통령만큼은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그 사람도 용서하시라고 간곡히 요청 드리자 아버지는 마침내 박 대통령도 용서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아버지는 자신에게 해를 입힌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가셨다.

한국전쟁 때 북한 인민군의 집중적인 포위 공격을 받아 소속 중대원 중 불과 네 명만 살아남을 때도 운 좋게 살아남으셨던 아버지. 그러나 대한민국의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를 다 지신 아버지는 이렇듯 마흔일곱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부터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나는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끝없이 속으로 되뇌었다. 아버지는 하늘나라에 가셨다, 좋은 곳에 가셨으니 내가 울 이유가 없다, 맏아들로서 앞으로 어머니와 동생들의 꿋꿋한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결코 나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장례식 날 운구차는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을 거쳐 장지로 향했다. 그 날 차안에서 나는 아버지가 한때 열정을 바쳐 일했던 그 회사를 멍한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갑자기 눈물이 솟으려 했으나 꾹 참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그렇지 않아도 팍팍했던 집안 경제는 급속히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나 스스로 이제 집안의 기둥이라고 다짐했으나 고등학생으로서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동네 아이들 그림 몇 차례 가르친 게 다였다. 그래도 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어머니는 이런저런 일을 알아보고 직접 벌여보기도 하셨다. 하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가뜩이나 심장병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터라 경제적인 압박에 심리적인 압박까지 더해지니 안타깝게도 갈수록 쇠약해지셨다.

그래도 주위에서 우리를 도와주는 손길이 있어 그 게 큰 격려가 되었다. 동아투위 위원들도 우리 가족을 늘 안타깝게 여겼다. 특히 아버지의 고등학교 후배인 성유보 위원이 이부영 위원과 우리 집을 자주 찾아주셨다. 때로는 쌀가마를 놓고 가시고 때로는 돈 봉투를 주고 가셨다. 동아투위 위원들도 어려웠을 텐데 십시일반 모아 그렇게 동료의 유족을 챙겼다.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고 조민기 위원의 부인이자 방송작가였던 홍승연 선생이 대학 2학년 때까지 내 등록금을 대 주셨다. 그 덕에 등록금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나는 일찍부터 조그만 화실을 차려 미대 입시생들을 지도하며 열심히 돈을 벌었다. 그래서 대학 3학년 때부터는 내 등록금과 빠듯하긴 했어도 우리 가족의 생활비를 스스로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그렇게 불완전하게나마 자립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셨다. 내가 대학 일학년 때인 1980년 9월 17일 지병 악화로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만 3년 뒤였다. 장차 잘되어 어머니 한 분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제대로 모시고 싶었는데, 나는 결국 그 기회를 얻지 못했다. 내 동생들은 성년이 되기도 전에 부모를 다 잃어, 따지고 보면 그 점에서는 나보다 더 불쌍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무렵 내 나이 만 열아홉 살이었으니 나 역시 온전한 어른이었다 하기는 어려웠으나 그래도 그때는 동생들을 보호하며 세파에 맞서 싸워나갈 수 있을 만큼 컸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싸워나갔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무척 사랑하고 존경하셨다.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도 아버지에 대해 조금의 원망도 보이지 않으셨다. 오히려 늘 우리에게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하고 좋은 분인가를 일깨워 주셨다. 우리 삼남매의 아버지에 대한 거의 맹목적이다시피 한 숭배 의식에는 어쩌면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이런 절대적인 사랑이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찬송가 외에는 다른 노래를 잘 부르시지 않던 어머니가 아버지와 사별 후 혼자 계실 때 가끔 나지막이 유행가를 부르셨다. 혜은이의 ‘당신만을 사랑해’였다.

“그대 내 곁을 떠나 멀리 있다 하여도, / 이 마음 깊은 곳에 언제나 살고 있어. / 파도 소리 들리는 바닷가에 서서 / 목메게 그려보는 다정한 그 얼굴. / 울며, 울며 나는 갈매기여 내 마음을 / 수평선 아득한 곳에 계시는 내 님에게 / 전해줘요. / 당신만을 사랑해 / 당신만을 사랑해 / 정말, 정말 사랑해.”

돈을 버느라 정신없이 보낸 학창시절 나는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수학여행이나 졸업여행 같은 것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고,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놀거나 미팅이나 엠티를 가는 것은 생각조차 못 해봤다. 수업시간도 친구들에게 대리출석을 부탁해 빼먹어가면서 입시생을 지도해야 했던 나로서는 오로지 생존만이 당면 목표였다. 방학이면 그림 가르쳐야 할 시간이 늘어 더욱 바빴고 그 스트레스로 인해 때로는 화실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여러 차례 느꼈다. 진짜로 투신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창밖의 환한 거리 풍경과 밝은 옷차림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나를 향해 나오라고 반갑게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그 환한 빛의 품으로 달려들고 싶은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내 힘으로 돈을 벌어 등록금을 내고 동생들과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럴 수 없이 고마웠다. 돌아볼수록 그렇게 좋은 부모님의 아들이었다는 것, 주위에는 여전히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고 동생들을 비롯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럴 수 없이 고마웠다. 부모님은 비록 일찍 돌아가셨지만, 두 분은 이렇듯 나에게 삶을 긍정하고 낙관적으로 살아가는 기질과 태도를 심어주셨다. 그 덕에 지금껏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전력투구할 수 있었고, 성가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진리는 끝내 승리한다

이 그림은 앞의 그림들과 달리 아버지가 사주신 가와데쇼보 화집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기대어 글을 마무리하기에 적합한 그림이라고 생각되어 이렇게 소개드린다. 러시아 화가 니콜라이 게가 그린 〈무엇이 진리인가?〉이다.

〈무엇이 진리인가?〉는 대비적인 화면 구성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등장인물은 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와 예수 그리스도다. 전자는 등을 보이고 있고 후자는 앞을 향하고 있다. 전자는 빛을 받고 있고 후자는 그림자에 싸여 있다. 빌라도는 자유롭고 편안한 제스처를 취한 반면, 예수는 손이 뒤로 결박된 상태다. 빌라도는 풍채가 좋으나 예수는 바짝 말라 있다.
알려져 있듯 예수는 빌라도에 의해 사형을 선고 받았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죄가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유대인들의 강력한 요구에 굴복해 살인자 바라바를 풀어주는 대신 예수를 처형장으로 보냈다. 전형적인 기회주의적 속성의 권력자였다.

그림 속의 빌라도는 예수에게 지금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네가 말하는 진리란 무엇이냐?
성경 요한복음에서 “무엇이 진리냐?”는 질문 전에 빌라도는 예수에게 “네가 왕이냐?”고 물었다. 예수는 이에 “네가 말한 대로 나는 왕이다”라고 답한 뒤 자신이 진리를 증언하러 세상에 왔으며,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하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그러자 빌라도가 되물은 것이 바로 무엇이 진리냐는 질문이었다.

그림 속의 빌라도는 예수를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는 예수를 그저 보잘 것 없는 정신병자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그가 예수를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예수가 그럴 만한 가치조차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묵묵히 빌라도를 바라보는 예수의 눈빛에서 우리는 그가 더는 말할 의사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성경에도 예수가 그에게 답변을 했다는 기록이 없다.

성경은 당시 예수의 심정에 대해 어떤 기록도 남기고 있지 않지만, 화가는 예수에게서 진정한 고독과 슬픔을 본다. 예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려 하지 않는다. 짓밟힐 만큼 짓밟혔고 비웃음 당할 만큼 당했다. 부도덕하고 정의롭지 못한 자는 저 따뜻하고 화사한 빛에 싸여 있고 진리와 양심을 외친 자는 이렇듯 더럽고 차가운 어둠 속에 팽개쳐져 있는 것, 그것이 인생의 엄연한 현실일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극단적인 모순으로 충만했던 제정 러시아에서 그런 사실을 늘 피부로 절감한 화가는 그 모든 인간적인 좌절과 고독, 슬픔의 원형으로 예수를 그렸다.

하지만 게의 예수는 결코 패자가 아니다. 그의 침묵은 굴종이 아니며, 그의 슬픔은 포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토록 지독한 고통을 진리와 양심을 위해 스스로 감내했기에 게의 예수는 진정한 승리자인 것이다.

나는 이 승리자로부터 동아투위 위원들의 모습을 본다. 동아투위 위원들은 해직 이후 지금까지 무려 37년을 갖가지 어려움 속에서 보냈다. 비록 민주화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복직이 되지 않고 있고 동아일보사로부터 진정한 사과도 받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패자가 아니다. 역사의 진정한 승리자다. 골고다 언덕에서 죽어간 예수를 바라보던 이스라엘 군중 가운데는 그가 이상만 좇다가 어리석은 정치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게 증명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오늘날 예수는 인류애의 표상이다.

물론 동아투위 위원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언론 환경은 아직 많은 문제와 모순 속에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17명의 언론인이 해직되었고, MBC의 경우 해직에 더해 1백여 명이 정직, 대기발령 등 중징계를 당했다. 의도적으로 거짓, 왜곡, 편파 보도를 했다면 모를까, 언론의 정도를 걸으려는 게 탄압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 시절에나 볼 법한 탄압의 풍경이 지금 우리 언론계에서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진리의 길을 걷는 자는 끝내 승리한다. 동아투위 위원들을 비롯해 언론의 정도를 걷다가 핍박을 당한 이들은 결국 역사의 승리자로 남을 것이다. 진리가 그들의 편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진리인가?

예수는 진리를 특정한 개념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다만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말했다. 누가 자유로운가? 아직도 과거의 불명예를 해결하지 못하는 동아일보사가 자유로운가, 자유언론의 표상이 된 동아투위가 자유로운가? 언론인을 자르고 내몰고 억누른 정권과 그에 편승한 사람들이 자유로운가, 진실을 말하기 위해 그 모든 탄압을 무릅쓴 사람들이 자유로운가? 자유는 노예의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체가 된 사람의 것이다. 돈과 권력의 맛은 달다. 그러나 자유의 맛은 더 달다. 이 싸움은 애초부터 승부가 정해진 싸움이다. 나의 아버지가 온몸으로 가르쳐주신 그 자유의 가치를 나는 평생 잊지 않고 살 것이다.

** 이 글은 2013년 5월 10일 초판 1쇄로 발행한 〈1975 - 유신 독재에 도전한 언론인들 이야기〉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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