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가 지난 10일 소속의원 정청래의 지역구인 마포을을 ‘전략 검토 지역’으로 발표하면서 그를 공천 대상에서 배제하자 당 안팎에서 반대여론이 들끓고 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정청래는 조선·중앙·동아일보를 비롯한 극우보수신문들과 TV조선이나 채널A 같은 종편에서 ‘막말 정치인’ 또는 ‘사상이 의심스러운 인물’이라고 융단폭격을 당해 왔다. 그러나 그것이 정당한 근거가 없는 인신공격이었음은 정청래 자신의 의정활동과 박근혜 정권의 온갖 불법행위와 비리에 맞서 싸운 투쟁의 과정에서 입증된 바 있다.

이 글의 결론부터 말하겠다. 더민주의 공관위와 지도부가 정청래에 대해 실질적으로 ‘정치적 사망 선고’를 내린 것은 20대 총선 승리와 내년 대선을 통한 정권교체라는 목표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역효과를 낼 것이 분명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8년 남짓 동안 대선에서 명백한 부정선거가 자행되어도, 정권의 무능과 직무태만으로 세월호 참사 같은 끔찍한 비극이 일어나도,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해도 과감하고 끈질기게 싸우지 못하던 제1야당 안에서 정청래는 가장 용기있게, 그리고 얄팍한 정치적 계산에 얽매이지 않고 최전선에 나선 전사(戰士)였다.

정청래는 지난해 5월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주승용을 향해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사퇴하는 것처럼 공갈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가 그것이 ‘막말’이라는 이유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정청래는 곧장 전남 여수로 주승용을 찾아가서 사과했으나 그 당의 윤리심판원은 그에게 ‘당직 정지 1년’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그는 재심에서 6개월로 징계가 가벼워진 뒤 9월에 최고위원으로 복귀했고 지난 1월 문재인이 대표직을 사퇴하자 최고위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것이 전부이다. 법적으로 말하면 정청래는 복권이 되었으므로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전과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공관위와 지도부는 명백한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그를 ‘컷오프’시켰다.

정청래 ‘공천 탈락’에 대해 더민주에서 나온 ‘공식적 견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11일 오전 공관위 위원장 홍창선이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정청래에 대해 “이 사람은 챔피언 수준이 된 거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처럼”이라고 단언했다. 진행자가 그 말에 놀라 정청래가 “지금 트럼프처럼 국민들에게 비쳐지고 있다는 판단을 했냐”고 묻자 홍창선은 이렇게 대답했다. “똑같지는 않은데, 그렇게 열혈 지지층이 한쪽에 있고, 한쪽은 아주 낯을 찡그리는 계층이 있고, 이런 한복판에 정청래라는 인물이 있다. 이렇게 자꾸 언론에 보도되니까 유명해지지 않았나?”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미국의 거부(巨富)로서 민주주의자와는 거리가 멀고 사회적 약자들을 멸시하는가 하면 인종 차별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가 어떤 면에서 정청래와 비슷하단 말인가? 언론이 보는 차원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면, 트럼프는 뉴욕타임스를 포함한 자유민주주의적 매체들의 격렬한 비판을 받고 있고 정청래는 극우보수매체인 조·중·동과 종편의 저주에 가까운 공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홍창선의 공개적 발언에서 더민주 공관위와 지도부가 왜 정청래를 공천에서 탈락시켰는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만약 그를 공천한다면, ‘낯을 찡그리는 계층’이 총선에서 정청래 때문에 반대표를 던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부정적 측면보다, 제1야당의 전통적 지지자들과 20~30대가 박근혜 정권에 맞서 용감하게 싸울 수 있는 정치인들을 열렬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왜 모르는 것일까?

정청래는 일방적으로 투쟁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2014년 여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무려 24일 동안이나 단식농성을 하던 정청래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는 언론단체들이 친 천막 바로 옆 천막에서 혼자 단정한 자세로 앉아서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하거나 그를 격려하러 찾아온 시민들과 공손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새정연 대표 문재인이 ‘유민 아빠’ 김영오의 무기한 단식을 말린다는 이유로 동조 단식을 한 것 말고 그 당에서는 어떤 의원도 정청래와 단식을 함께하지 않았다. 나는 더러 그와 이야기를 하면서 아주 겸손하고 진정성이 강한 정치인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정청래는 지난달 박근혜 정권이 강행하던 테러방지법안 국회 통과에 맞서 야당이 벌인 필리버스터 투쟁에서도 단순한 ‘막말 정치인’이 아니라 의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전문지식이 뛰어나고 주권자들에게 봉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충만하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 바 있다. 게다가 그의 유머감각은 국회방송을 시청하던 사람들을 수시로 웃기곤 했다.

더민주 공관위와 지도부에 다시 한 번 강력히 권고한다. ‘잘못된 정치적 계산’에 따라 정청래를 공천에서 탈락시킨 것이 오히려 총선에서 격렬한 역풍을 불러일으키리라는 사실을 이제라도 깨닫고 신속히 재심을 해서 그가 밝은 표정으로 선거운동의 현장으로 달려가게 하기 바란다.

*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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