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 모차르트의 삶에서 가장 우스꽝스런, 씁쓸한, 아니 무척 화나는 풍경이 있습니다. 1778년, 22살 모차르트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파리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만하임 궁정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사랑하는 알로이지아와 생이별을 한 채 모차르트는 어머니와 함께 파리에 도착한 것입니다. 4월 어느 날, 샤보 백작부인의 집에 초대 받았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도착해서 30분 동안 온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큰 방에서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샤보 부인이 들어오더니 대뜸 연주를 해 보라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꽁꽁 언 손으로 가련하고도 비참한 마음으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기가 막힌 일은, 그 부인과 신사 양반들이 음악은 듣지도 않고 스케치에 열중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의자와 탁자를 향해 연주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파리에서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1778. 5. 1)

파리의 귀족들은 갑(甲)이었고 모차르트는 을(乙)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어서 일자리를 구해야 했으니까요. 모차르트는 듣는 이의 태도가 불량하면 베토벤처럼 피아노를 쾅 닫고 나갈, 그런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샤보 부인 일행의 무례한 행동에 모차르트는 심한 모멸감을 느꼈지만 그냥 참고 피아노를 쳤습니다. 누구든 자기의 음악을 듣고 싶어하면 몇 시간이고 피아노를 쳐 줄 수 있는 상냥한 모차르트였지만, 이렇게 “음악은 듣지도 않고 스케치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편지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이들에게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고 느낄 수 있는 가슴이 있다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씁쓸한 일들을 그저 웃어넘길 수 있을텐데요.”

음악은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지요. 어엿한 어른이 된 모차르트의 음악을 파리의 귀족들은 귀로 듣지도 않았고 마음으로 느끼지도 않았습니다. 7살 신동 모차르트의 묘기에 환호를 보냈던 파리 사람들은 22살 모차르트의 원숙한 음악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았습니다. 파리에 도착한 지 한달 남짓, 모차르트는 이미 황당한 일을 겪고 있었습니다. 모차르트의 재능에 위협을 느낀 파리의 음악가들이 그의 파리 진출을 방해하고 있었던 거지요. 아버지에게 보낸 1778년 5월 1일자 편지는 매우 불쾌한 해프닝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그해 4월에 서둘러 작곡한 협주교향곡 K.297b의 악보가 실종되어 연주할 수 없게 된,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모차르트는 이 협주교향곡이 파리에서 대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확신했고, 당대 최고의 연주자였던 플루트의 요한 벤틀링, 오보에의 프리드리히 람, 바순의 게오르크 리터, 호른의 지오반니 푼토 등 4명도 무척 기대한 연주회였습니다.* 그런데, 나흘 전에 극장 지배인 르그로에게 복사를 맡긴 악보가 없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극장 관계자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모차르트는 이탈리아 출신의 극장 악단장인 캄비니*가 꾸민 음모라고 의심했지만, 누구도 진상을 밝혀낼 수 없었습니다.

5월, 모차르트는 플루트를 잘 부는 드 긴느 백작과 하프를 잘 하는 그의 딸을 위해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협주곡’ C장조를 작곡했습니다. 모차르트가 그리 좋아하지 않은 악기였고 그리 유쾌하지 않은 상황의 연속이었지만, 이렇게 맑고 우아한 곡을 만든 것이지요. 이어서 6월, 콩세르 스피리튀엘에서 초연한 D장조 교향곡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모차르트는 만하임에서 익힌 관현악법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클라리넷을 포함한 2관편성의 찬란한 교향곡으로 파리 음악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특히, 3악장 피날레는 나지막히 시작하여 청중들이 주의를 기울이게 만든 뒤 포르테로 깜짝 놀라게 하여 박수를 이끌어 냈습니다. 듣는 이의 마음을 휘어잡고 흔드는 능력을 십분 발휘한 거지요. 모차르트는 어떻게 하면 파리의 청중들을 열광시킬 수 있을지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파리에서의 성공은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모차르트가 기대한 일자리는 나타나지 않았고, 아무도 모차르트에게 오페라를 주문하지 않았습니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오르간 연주자로 초청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모차르트가 거절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러 이유를 대긴 했지만, 그 자리를 수락할 경우 당분간 오페라를 전혀 쓸 수 없게 될 거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을 것 같군요. 모차르트는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피아노 레슨을 해야 했고, 무용가 장 조르주 노베르가 공연할 판토마임 <레 프티 리엥>을 위한 음악을 써야 했습니다.

힘들었던 파리 시절, 가장 아픈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아버지 대신 파리에 온 어머니 안나 마리아가 세상을 떠나 버린 것입니다.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어머니의 죽음은 모차르트가 그때까지 겪은 시련 중 가장 힘든 것이었고, 아버지와의 갈등을 깊게 만든 비극이었습니다.

어머니 안나 마리아는 남편에게 썼습니다. “창문이 어두운 골목을 향해 나 있는 작은 방에 앉아 있어요. 불빛도 거의 없고 먹을 것도 없어요.” 모차르트는 며칠째 밖에서 일을 찾느라 어머니를 충분히 돌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심하게 아팠지만 말이 잘 통하지 않는 프랑스 의사의 진료를 거부했습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해 지쳐가고 있던 모차르트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청천벽력이었습니다. 7월 3일, 어머니는 결국 숨을 거두웠습니다. 모차르트는 정신을 차리고 잘츠부르크에 두 통의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첫 편지는 아버지에게 쓴 것으로, 충격적인 소식을 감춘 채 어머니의 병이 위중하다는 선의의 거짓말을 담았습니다. 아버지가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시간을 주려는 것이었죠.

“매우 슬프고도 우울한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사랑하는 어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십니다. 희망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며칠 낮밤을 보내면서 저는 오직 신의 뜻에만 매달렸습니다. 하느님이 정하신 일은 우리 눈에 아무리 낯설더라도 언제나 가장 옳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희망을 가집시다. 너무 많이는 말고요.” (아버지에게 1778. 7. 3)

두 번째 편지는 가족의 오랜 친구였던 아베 불링어에게 보낸 것으로, 이 고통스러운 소식을 아버지와 누나에게 조심스레 잘 전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크나큰 슬픔 속에서도 침착하게 사람들을 배려하는 모차르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지요. 그러나 아버지는 아내의 뜻밖의 죽음에 크게 상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스런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고, 급기야 볼프강이 어머니를 방치했기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라고 아들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안 그래도 심한 자책감을 느끼고 있던 모차르트는 생전 처음 ‘깊은 우울증’을 느꼈다고 쓰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에 쓴 걸로 추정되는 피아노 소나타 A단조 K.310과 바이올린 소나타 E단조 K.304는 모차르트의 수많은 작품 중 전기적인 배경을 통해 설명이 가능한 몇 안 되는 곡에 해당됩니다. 두 악장으로 된 E단조 소나타는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단조로 된 유일한 작품으로, 첫 악장은 검은 색 유니슨의 주제를 변형시키며 슬픔, 긴장, 불안의 복합적인 정서를 고귀한 비극으로 승화시킵니다. 2악장 템포 디 메뉴엣(메뉴엣의 템포로)는 좀 더 차분한 느낌으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명상하는 느낌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아르투르 그루미오와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 두 사람은 삶과 죽음을 대하는 모차르트의 의연함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감정 과잉에 빠지지 않고 담담한 조화의 아름다움을 들려줍니다.

바이올린 소나타 E단조 K.304 (피아노 클라라 하스킬, 바이올린 아르투어 그루미오)

▶1악장 알레그로 https://youtu.be/zGCupqZmSG4 (링크를 클릭하시면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2악장 템포 디 메뉴엣 https://youtu.be/IaIflMdLgLg (링크를 클릭하시면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피아노 소나타 A단조의 1악장 알레그로 마에스토소(빠르고 장엄하게)를 들으면 눈물이 범벅이 된 채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지금까지 작곡한 어떤 소나타도 들려주지 못한 격렬한 슬픔과 열정을 담고 있습니다.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 콘 에스프레시오네(천천히 노래하듯, 표정을 갖고)는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느낌입니다. 2006년 모차르트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빈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미츠코 우치다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어떻게 죽을 수가 있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난 거지? 하는 감정입니다. 모차르트는 어머니가 자신을 용서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몇 달간 그들은 같이 있지도 못했습니다. 모차르트는 가슴에 손을 얹은 채 간절히 용서를 구하고 있는 거죠. 그는 자신이 충분하게 어머니를 돌보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느린 악장에는 이러한 회한이 담겨있습니다.”

피아노 소나타 A단조 K.310 (연주 마리아 조앙 피레스)
▶https://youtu.be/AkMA-Wt7mkY (링크를 클릭하시면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로 당장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하고 알로이지아가 있는 뮌헨으로 향했습니다. 전제 군주인 콜로레도 대주교의 밑으로 돌아가는 게 죽기보다 싫었던 거지요. 파리에 머물 동안 내내 보고 싶었던 알로이지아를 다시 만나 위로받고 싶은 생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프리마돈나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알로이지아는 모차르트를 냉정하게 외면합니다. 모차르트가 온 마음을 주고,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재단한 아리아’ K.294를 써서 바친 알로이지아는 모차르트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했습니다.*주 모차르트의 생애에서 가장 아팠던 1778년은 이렇게 저물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고 엉뚱한 곳에서 ‘방탕한 꿈’을 꾼다고 나무랬습니다. 모차르트는 그해 마지막날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서 “오늘은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그냥 눈물을 흘리고 있을 뿐”이라며, 이렇게 덧붙입니다.

“참, ‘방탕한 꿈’이라고 하셨던가요? 저는 계속해서 꿈을 꿀 겁니다. 이 땅위에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하필 방탕한 꿈이라니요! 평화로운, 달콤한, 상쾌한 꿈이라고 하셔야지요! 평화롭거나 달콤하지 않은 것들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슬픔과 약간의 즐거움, 그리고 몇몇 참을 수 없는 일들로 이루어져 제 인생을 만들어 낸 현실 말입니다!” (뮌헨에서 아버지에게, 1778. 12. 31)

* 모차르트는 이 작품이 연주되지 않은 것은 르그로에게도 엄청난 손해라고 주장했다. “이 곡은 크게 성공했을 거에요. 지금은 아무리 원해도 이 곡을 연주할 수 없지요. 그렇게 훌륭한 연주자 4명을 어떻게 또 모을 수 있겠어요?” (파리에서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1778. 7. 9) 이 협주교향곡을 연주할 예정이었던 관악기 연주자는 당시 유럽의 정상급 음악가였다. 벤틀링은 만하임 악단의 수석 플루티스트로, 당대의 가장 뛰어난 연주자로 꼽혔다. 람은 독일의 뛰어난 오보에 연주자로, 모차르트는 그를 위해 오보에 사중주곡 K.370을 작곡했다. 리터는 모차르트가 가장 좋아한 바순 연주자로, 만하임 바순 악파의 시조가 된다. 이 세 사람은 1777년 만하임에서 모차르트와 만나서 친구가 됐다. 푼토는 체코 출신의 호른 연주자로, 자연호른의 다양한 연주기법을 개발했다. 1778년 파리에서 그를 만난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푼토의 연주는 근사합니다”라고 썼다. 20세기에 발견된 이 곡의 악보에는 플루트 대신 클라리넷이 들어있어서 한 동안 위작 논란을 빚기도 했으나, 연주 상황에 맞게 모차르트가 개작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 주세페 캄비니(Giuseppe Cambini, 1746~1825) : 이탈리아 작곡가로, 1773년 경 파리에 온 뒤 14편의 오페라를 비롯한 많은 작품을 발표해서 인기를 얻었다. 모차르트는 캄비니가 주도해서 협주교향곡 연주를 사보타주한 게 아닌지 의심했지만, 글루크는 “캄비니는 정직한 친구”라고 평가했다.

* 모차르트와 알로이지아의 사랑에 대해서는 졸저 <클래식 마음을 어루만지다> p.27~p.39 참고.

모차르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알로이지아를 위한 아리아 <테살리 사람들>(Popoli di Tessaglia) K.316을 썼다. 이 곡은 알로이지아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를 담고 있다. 높은 G음까지 치닫는 끝 부분의 화려한 스케일은 알로이지아의 목소리에 잘 어울렸을 것이다. 이 곡 또한 “그녀 몸에 꼭 맞게 재단한 옷”인 셈이었다. 글루크의 오페라 <알세스테>에서 가사를 따 온 이 아리아를 알로이지아에게 보내며 모차르트는 “이 분야의 제 작품 중 제일 좋은 곡”이라고 썼다. (1778년 7월 30일, 알로이지아 베버에게 쓴 편지)

노랫말은 모차르트 자신의 아픔을 하소연하고 있는 듯하다. “불멸의 신이여, 제게 평화를 달라고 감히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제 슬픔을 위로할 연민의 빛 한 줄기만 보내주시길…. 내 가슴을 채운 이 비탄과 공포를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리, 여성의 헌신과 어머니의 마음을 갖지 않은 사람은….”

▶http://youtu.be/PwCbvnKeNVU (링크를 클릭하시면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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