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1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과 관련해 야당을 비판하는가 하면 청와대적 시각만이 정상화라는 것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유엔이 반대하고 위헌소지마저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의 몸통이 자신이라는 것을 드러내면서 반대 목소리를 적극 반박해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미국 방문에 앞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교육부가 전날 행정예고한 중·고교 역사 교과서 국정화 고시를 했다. 정치권이 불필요한 논란으로 국론 분열을 일으키기 보다는 올바른 역사 교육 정상화를 이뤄 국민통합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달라’고 당부하는 등 여야가 극한 대립을 벌이는 정국의 정면 돌파 의지를 강력 표출했다.

박 대통령은 교육부의 국정화 추진 행정은 정상인데 야권이 국론 분열의 문제를 일으킨다고 정면에서 비판하면서 국회에 계류중인 민생법안의 신속 처리를 요구해 야권의 반발이 예상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해 유엔은 정권에 의한 악용 가능성을 우려해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고 우리 헌법도 학문의 중립성, 전문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박 대통령은 전혀 고려치 않은 태도를 보였다. 특히 이번 사태는 경제 문제 등 난제가 산적해 있고, 정기국회가 예산심의를 앞두고 있는 시기에 불거져 청와대의 정치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면서, 인간이란 개개인이 다양한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갖고 태어난다는 진실에 역행한다. 청와대가 앞장서고 교육부와 새누리당이 돌격대로 나선 국정화 시도는 당연히 심각한 반발과 저항, 극한 대치를 불러올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예민한 시기에, 폭발성이 강한 국정화 강행을 시도했고 예상처럼 국회는 물론 시민사회의 격렬한 분열과 대립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야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만을 높인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정국을 보수와 진보의 대결 국면으로 유도하거나 최소한 방치한다는 정치적 노림수로 추정된다.

청년 실업, 양극화 심화, 저성장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제 등이 시급한 현안인데도 독재국가에서나 채택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시도해 결과적으로 국민의 관심을 빗나가게 만드는 것은 심각한 국력 낭비다.

이번 국정화 추진은 찬반 양론을 아우르는 식의 공론화 과정이 생략된 채 강행된 것이란 점에서 대통령의 국정 철학의 비정상을 의심하게 된다. 특히 친일을 미화하고 독재를 정당화한다고 비판하는 세력에 대해 당정은 좌편향, 친북이라고 매도하고 나선 것은 정상적인 토론과 협의를 차단하는 막가파 공세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시대착오적인 매카시적 공세가 광기를 부리는데도 야권과 시민사회를 향해 ‘너 때문이야’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교육부와 새누리당이 앞장서, 다수의 교육계 전문가나 시민사회가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국정화 작업을 추진하면서 벌어지고 있고 청와대가 태풍의 눈이 되고 있는데도 박 대통령은 ‘나 몰라라’하는 식의 발언을 한 것은 국민을 무시한 행동이라는 비판을 자초한다.

교육부는 속전속결식으로 국정화 방침을 결정한 뒤 새로운 역사 교과서 집필 책임자를 선정했는데 그 책임자는 박정희, 전두환 독재를 미화하고 광주항쟁을 부정적으로 기술한 교과서에 관련된 매우 편향된, 정상적 사고가 마비된 인사로 드러났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시각을 가진 인사에게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책임을 맡긴다는 것만으로도 정쟁과 이념대결을 부추기는 행위라는 확실한 증거다.

박 대통령은 또 올바른 역사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우리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올바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도록 가르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수구, 보수 세력이 주장하는 역사를 올바른 것이라고 여기는 듯한 사고방식을 드러냈는데 이는 다양한 시각 차이를 인정치 않는 불통의 이미지가 빈 말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냈다. 민주주의는 다양성과 시각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하는데 이를 대통령이 원천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특히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올바른 역사관은 매우 중요하다며 대한민국에 대한 확고한 역사관과 자긍심을 심어주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문화적·역사적으로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통일관은 흡수통합, 남한 주도에 의한 통일을 지향하는 것으로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통일관은 7.4공동성명, 6.15공동선언 등에 담긴 남북 화해와 교류협력을 통한 평화적 통일 방식에 역행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박 대통령은 통일 대박을 외쳐왔지만 집권 절반이 지나도록 남북 관계는 군사적 대립과 전면전의 위기지수만이 높아져 왔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주장하는 통일관을 내세우면서 외세 지배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미국의 대북 정책에 예속되었다 할 만큼 자주성 상실이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는 점을 외면한 언급으로 보인다. 북한 붕괴 시 주변 강대국들이 북한 지역을 분할 통치한다는 미국의 시나리오까지 나온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확고한 역사관을 강조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박 대통령은 이어 ‘학생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올바른 역사관을 갖고 가치관을 확립해서 나라의 미래를 열어가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청년들의 사회적 절망감이 헬조선이라는 용어의 일반화로 까지 비화되고 있다는 현실에 비춰 대통령의 그런 발언은 공허하게 들린다. 초중고 학생들도 사교육의 희생양으로 전락한 채 비정상적인 교육 환경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현실도 박 대통령은 깊이 살펴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덧셈의 정치가 아닌 뺄셈의 정치로 여야가 박 터지게 싸우도록 원인 제공을 하고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지구촌은 박 대통령의 국내 정치 행태 등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대응한다는 점에 해외로 나가는 시점에서 국내 정치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것은 매우 부적절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모두의 대통령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치의 정도다. 계파 정치에 몰두하거나 정치 공학적 또는 정치 공작적 발상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안 된다. 국민에 대한 최상의 서비스를 통해 행복 지수를 높이도록 하는 것이 대통령 책무다. 철지난 이념 논쟁을 촉발하는 식의 저급한 정치를 하거나 제왕적 대통령으로 비판받는 일은 피해야 한다. 만약 대통령이 내년 총선을 야당에 대한 종북 공세로 치르기 위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를 촉발했다면 그것은 반드시 심판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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