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용서해 주게! 자네를 죽인 건 바로 날세.”
영화 〈아마데우스〉의 첫 장면, 정신병원에 수용돼 있던 살리에리가 큰 소리로 울부짖지요. 문을 박차고 들어가 보니 살리에리가 면도칼로 자살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충격적인 이 순간에 울려 퍼지는 음악,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G단조입니다.

영화 〈아마데우스〉 중 살리에리 자살 장면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G단조 K.183)
▶ http://youtu.be/hXBXlfqDjpA (1:55부터, QR코드를 스캔하거나, 링크를 클릭하시면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우리나라 음악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G단조 교향곡, 그때까지 모차르트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비극적 감정이 폭발합니다. 몸부림치듯 격동하는 당김음으로 시작하고, 4대의 호른이 육중한 무게를 더합니다.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G단조 K.183
▶ https://youtu.be/6Btlp3T7IIk (프란스 브뤼헨 지휘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QR코드를 스캔하거나, 링크를 클릭하시면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17살 때인 1773년 10월, 빈에 다녀온 뒤 잘츠부르크에서 작곡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모차르트는 자유를 갈구하고 있다고 외치는 걸까요? 봉건 영주의 속박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걸까요? 모차르트는 그해 3월, 세 번째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왔습니다. 바로 그때, 모차르트의 생애를 규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하나 생깁니다. 세상을 떠난 잘츠부르크 대주교 슈라텐바흐(1698~1771)의 후임으로 그해 3월 12일 콜로레도(1732~1812)가 부임해 온 것이죠.

슈라텐바흐는 보수적인 인물이었지만 모차르트 가족의 여행에 대해서 너그러웠습니다. 모차르트 가족이 오랜 기간 자리를 비우면 임금을 주지 않았을 뿐, 이렇다 할 간섭을 하지 않았지요. 그는 ‘잘츠부르크의 기적’ 모차르트가 유럽 곳곳을 누비며 홍보 사절 노릇을 하고 있으니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슈라텐바흐보다 훨씬 젊은 콜로레도는 좀 달랐습니다. 그는 계몽 군주로서 잘츠부르크의 교회, 학교, 법원, 의료, 행정을 개혁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개혁은 봉건제도의 틀을 엄격히 지키는 테두리 안의 개혁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귀족의 하인에 불과했던 음악가에게 자유를 줄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죠.

그는 음악을 꽤 좋아해서, 궁정 악단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모차르트를 궁정 부악장에 임명하며 보수를 세 배 올려주었지만, 대신 여행의 자유를 엄격히 제한해 버렸습니다. 모차르트를 늘 가까이 붙들어두고 싶다는 개인적 욕구도 없지 않았겠지요.

콜로레도 대주교. 그가 모차르트의 여행을 제한한 것은 당시로서는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유 없이 살 수 없었던 모차르트는 대주교에게 격렬히 반발했다.

모차르트 부자(父子)는 그해 7월부터 석 달 동안 빈에 다녀왔습니다. 신임 대주교에게 밝히지 않은 여행의 목적은 ‘새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콜로레도 대주교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두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암호로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구직운동은 실패였습니다. 모차르트가 빈에서 배워 온 것은 ‘질풍노도’의 정신이었습니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 빈에는 레싱, 괴테, 실러, 헤르더가 주창한 ‘질풍노도’의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레싱은 “형제애의 실천을 통해 우리는 모든 인류가 한 가족임을 배우며, 지위가 높든 낮든, 부자든 가난뱅이든 서로 돕고 보호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고 선언했는데, 이러한 프리메이슨의 정신은 당시 지식인 사회에서 널리 환영받고 있었습니다. 모차르트는 이 무렵, 레싱의 친구인 토비아스 게블러Tobias Gebler의 대본을 바탕으로 프리메이슨 이념을 담은 오페라 <에집트왕 타모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질풍노도’의 거센 바람을 체험한 모차르트는 외부 세계의 압력, 특히 정치권력의 족쇄가 인간의 자유를 질식시키는 현실에 저항하는 젊은이로 변모하고 있었습니다.

음악학자들은 교향곡 G단조 K.183을 설명하며 이 ‘질풍노도’(Strum und Drang) 운동의 영향을 지적합니다. “그 동안 모차르트 안에서 몇 번씩 불타올랐던 정열적이고 염세적인 기분이 가장 격하게 표현됐다.” (H. 아베르트) “기적과 같은 작품이다. 완전히 개인적인 고뇌의 체험에서 나온 감정으로, 모든 악장에서 이러한 특성이 분명히 나타난다.” (알프레드 아인슈타인)

모차르트는 이 때 빈에서 당대 최고의 작곡가 하이든의 단조(短調) 교향곡들 - 39번 G단조, 44번 E단조 <애도>, 45번 F#단조 〈고별〉, 52번 C단조 - 을 접하고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G단조 교향곡이 모차르트만의 자유를 향한 갈망, 열정, 고뇌를 담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모차르트는 이미 ‘배우는 어린이’가 아니었습니다.

“이때 이후로 그가 작곡한 거의 모든 음악은 틀림없는 그만의 것이었다. 그는 더 이상 자기보다 나이 많고 경험 많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모방하지 않았다.” (제레미 시프먼 〈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 임선근 옮김, 포노 p.77~p.78)

그는 자기의 음악적 소명을 이미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잘츠부르크라는 작은 도시에 자신의 음악을 가두어 두는 것은 이 소명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콜로레도가 지배하는 잘츠부르크에 평생 갇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지요. 오페라 작곡가로 성공하겠다는 모차르트의 꿈은 확고했습니다. 그러나 오페라 극장이 없는 잘츠부르크에서는 불가능한 꿈이었습니다. 콜로레도 대주교는 대중 집회를 위한 극장을 새로 지었지만, 오페라 극장으로 활용되던 잘츠부르크 대학 강당을 폐쇄해 버렸습니다. 이래저래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를 벗어나야만 했습니다.

콜로레도 대주교는 이 반항적인 교향곡에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아무 기록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여느 때처럼 즐겁고 편안한 음악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격렬한 음악이 나오자 당황했을 수 있지요. 불쾌해 하며 모차르트에게 어떤 의도가 있을지 잠시 생각해 보았을지도 모르지요. 분명한 것은 이 곡이 당시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음악이었다는 점입니다. 1악장의 템포 지시어는 ‘알레그로 콘 브리오’(빠르고 힘차게), 모차르트로서는 매우 이례적이지요. 모차르트가 이 지시어를 사용한 것은 이 곡 하나 뿐입니다. 훗날 베토벤이 〈영웅〉과 〈운명〉 첫 악장 등에서 즐겨 쓴 지시어로 된 이 1악장은 베토벤의 열정을 예감케 합니다.

모차르트는 1778년 마지막날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 썼다. “많은 슬픔, 약간의 즐거움, 그리고 몇 가지 참을 수 없는 일로 이뤄져 제 인생을 만들어 낸 현실….”

모차르트의 교향곡 중 번호가 붙어 있는 41개 중 단조로 된 곡은 25번 K.183과 40번 K.550 두 곡 뿐입니다. 둘 다 비극적 조성인 G단조로 돼 있는데, 25번을 ‘작은 G단조’, 40번을 ‘큰 G단조’라 부르지요. 자유를 갈망했지만 아직 봉건제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던 시절에 만든 ‘작은 G단조’, 자유 음악가로 인생의 정점을 살았지만 고독했던 시절에 만든 ‘큰 G단조’…. 언제나 많은 슬픔을 가슴에 지닌 채 살았던 모차르트의 ‘맨 얼굴’ 아닐까요?

* 영화 〈아마데우스〉는 1823년 겨울, 정신병자 수용소에서 살리에리가 자살을 기도한 뒤 신부에게 자기가 모차르트를 살해한 이유를 고백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 첫 장면부터 픽션이다. 실제로 1823년, 살리에리는 노환으로 빈 근교 알저포어슈타트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해 10월 베토벤의 제자 이그나츠 모셸레스가 살리에리를 문병했다. 살리에리는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대해 해명했다.

“나는 곧 죽을 게 분명해. 하지만, 내 명예를 걸고 얘기하겠네. 내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그 터무니없는 소문 말일세. 아니야, 악의로, 순전히 악의로 꾸며낸 얘기야. 모셸레스, 세상 사람들에게 말해 주게. 곧 죽어 갈 늙은 살리에리가 이렇게 얘기했다고 말일세...”

이 사실을 작가 페터 샤퍼나 밀로스 포먼 감독이 몰랐을 리 없다. 처음부터 감독과 작가는 이 영화가 픽션이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모차르트 독살설’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와 실제 현실 사이의 차이는 졸고 〈영화 아마데우스, 어디까지 사실일까?〉(〈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 호미, p.149~p.165)에 정리해 보았다. 이 문제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서 써 본 글이다. 백진현 선생의 지적대로 이 영화는 허구일 뿐이니 그냥 영화로 보면 된다. “영화가 사실과 다르다고 비판하는 것은 정말 바보같은 짓이다. 사실에 기반을 둔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허구적 이야기인 영화에 대한 판단은 각자가 알아서 하는 것이다.” (백진현 〈만들어진 모차르트 신화〉, 뮤직디스크 p.57) 참고로 영화 맨 앞, 두 개의 장엄한 불협화음은 G단조 교향곡이 아니라 〈돈조반니〉 서곡 첫 부분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저작권자 © 자유언론실천재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