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는 ‘즐기다’는 뜻의 이탈리아 말 ‘divertire’에서 왔습니다. 부담 없이 즐기는 오락 음악이란 뜻이지요. 옛날에는 ‘희유곡’(戱遊曲)이라고 번역했는데, 영어와 불어에서 ‘여흥’, ‘심심풀이’라는 뜻으로 통하니 ‘부담없이 가볍게 들을 수 있는 곡’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모차르트 때는 귀족들의 파티나 대학 졸업식에서 흥겨운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연주했습니다.

이 D장조 디베르티멘토는 모차르트가 16살 되던 1772년 초,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잘츠부르크에 돌아와서 쓴 곡입니다. 누가 이 곡을 주문해서 작곡하게 됐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어느 부유한 귀족, 또는 당시 잘츠부르크 통치자였던 슈라텐바흐 대주교를 위해서 쓴 곡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모차르트 디베르티멘토 D장조 K.136
▶https://youtu.be/7FRYoBy7iT8 (플로리안 하이어리크 지휘 만하임 실내오케스트라, 링크를 클릭하시면 연결됩니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던 모차르트는 이미 <폰토의 왕 미트리다테>, <아스카니오의 알바>, <루치오 실라> 등 오페라는 물론 교향곡과 미사곡을 비롯한 모든 장르의 작품으로 무시할 수 없는 캐리어를 쌓은 어엿한 작곡가였습니다. 이탈리아 방문 중 시스티나 성당에서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를 단 한 번 듣고 악보에 적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교황 클레멘스 14세로부터 황금박차 훈장을 받았고, 볼로냐 ‘아카데미아 필하르모니카’의 최연소 회원이 되기도 했지요. 모차르트가 이름을 ‘아마데우스’(Amadeus)라고 바꾼 것은 이탈리아에 매료됐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이미 대가의 경지에 이른 모차르트의 역량으로 이렇게 단순하고 예쁜 디베르티멘토를 작곡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디베르티멘토는 단순한 여흥 음악이 아니라 보석처럼 탄탄한 예술성을 갖고 있습니다. 현악 합주로 연주하는 곡에서 찬란한 빛이 발산되는 게 신기하지 않은가요? 파티의 전면에 나서서 듣는 이를 압도하는 대신, 한 걸음 물러서서 주변을 밝고 생기있게 해 주는 곡입니다. 음악은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작곡가의 꿈을 노래하기도 하지요. 이 곡은 소년 모차르트가 꿈꾼 세상,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평화롭게 어울리는 이상향을 그린 게 아닐까요?

제 친구 한 명은, 이 곡을 들으면 피렌체에 있는 다비드상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완벽한 조형미를 자랑하는 곡으로 다가온다는 거죠. 친구의 얘기도 타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자연 그대로 꾸밈없이 흐르는 착한 마음을 이 곡에서 느낍니다. 솔직하고 선량한 마음으로 어우러지는 피안의 세상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곡입니다.

이 곡은 요즘도 드라마의 파티 장면에 단골 메뉴로 나오지요. 드라마 속의 파티 장면에는 대개 애정과 욕망, 갈등과 음모가 등장합니다. 착하디착한 소년 모차르트의 마음을 담고 있는 이 곡을 들으면 사악한 마음을 갖기가 어렵지요. 하지만,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배경에 흐르는 선량한 음악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세상 한켠에서는 모차르트의 선량한 음악이 흐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욕망과 갈등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부대끼고 있는 것 같군요.

1악장 알레그로와 3악장 프레스토는 KBS FM의 시그널 음악으로 쓰인 적이 있습니다. 생기 있게 빛나는 현의 화음에 청취자들은 청량감을 맛보며 일상을 살아낼 힘을 얻지요. 하지만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고 나니 맑디맑은 샘물처럼 고요히 미소 짓는 2악장 안단테를 한 번 더 듣고 싶어지는군요.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의 통치자를 위해 봉사하며 디베르티멘토를 많이 작곡했습니다. 유명한 ‘모차르트의 메뉴엣’이 들어있는 디베르티멘토 D장조 K.334는 잘츠부르크 명문 귀족인 로비니히를 위해서 썼습니다. 당시 음악가는 요리사와 비슷한 등급의 하인 취급을 받았고, 디베르티멘토를 쓰는 것은 때론 의무사항이었지요. 훗날 봉건 질서와 대주교의 속박을 박차고 나와 자유음악가가 된 뒤 모차르트는 디베르티멘토를 거의 쓰지 않게 됩니다. 현악삼중주를 위한 디베르티멘토 Eb장조 K.563 정도가 예외적인 경우지요.

하지만, 어떤 경우든 ‘듣는 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모차르트의 태도는 끝까지 바뀌지 않았습니다. 모차르트는 과장된 감정의 배설은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느낌(feeling)과 취향(good taste), 그리고 호소력(appeal)이 음악에서 가장 중요하며, 청중들에게 무례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디베르티멘토는 모차르트의 여느 작품들보다 더 예의바른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디베르티멘토 D장조 K.136은 같은 시기에 작곡한 Bb장조 K.137, F장조 K.138과 함께 한 세트를 이룹니다.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의 관광식당에 가면 현악사중주단이 출연해서 D장조 K.136과 함께 F장조 K.138를 연주하곤 하지요. F장조 디베르티멘토의 1악장 알레그로는 이탈리아풍의 아름다운 선율에 상냥하고 친절한 마음을 가득 실어서 노래합니다. 이 곡을 듣노라면 얼굴에 홍조를 띈 채 방긋 웃는 소년 모차르트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릅니다.

모차르트 디베르티멘토 F장조 K.138
▶https://youtu.be/XTr41nRU7h4 (플로리안 하이어리크 지휘 만하임 실내오케스트라, 링크를 클릭하시면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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