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를 음악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라고 하지요. 단순히 음악적 재능이 탁월하다는 이유 만으로 모차르트가 위대하다고 말한다면 성급한 일일 것입니다. 사랑과 자유의 음악혼으로 충만한 작곡가, 세월을 뛰어넘어 21세기에도 우리를 위로하는 공감의 음악가, 개인의 존엄성을 강조한 시민민주주의 시대에 인간을 위한 소명을 다한 예술가…. 모차르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항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친구 야크빈(Gottfried von Jaquin)은 1787년 빈의 모차르트 집을 방문한 뒤 방명록에 이렇게 썼지요.

“가슴이 없는 천재라는 것은 넌센스다. 천재란 위대한 지성이나 탁월한 상상력, 심지어 이 두 가지를 합쳐서도 이뤄지지 않는다. 천재를 만드는 것은 오직 사랑, 사랑, 사랑뿐이다.”
- 고트프리트 야크빈, 1787년 4월 11일 모차르트의 집을 방문해 남긴 방명록

천재의 본질을 얘기한 이 말의 깊은 뜻은 책을 읽으시면서 차근차근 생각해 보기로 하지요. 일단, 모차르트를 천재라고 부르는 이유를 간단히 살펴볼까요? 모차르트는 35살 짧은 삶을 살며 22편의 오페라, 41곡의 교향곡, 27곡의 피아노협주곡을 비롯, 도합 600곡이 넘는 작품을 썼지요. 이것은 전문 음악가가 35년 동안 베껴 쓸 수도 없는 엄청난 분량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작품들이 하나같이 완벽하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모차르트의 자필악보는 몇몇 예외를 빼면 수정한 흔적이 별로 없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음악을 그냥 술술 써 내려가면 음악이 됐다는 것이지요. 모차르트는 당구를 치면서도 작곡을 했다고 합니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입증하는 일화는 무수히 많습니다. 다 열거할 수 없으니 몇 가지만 살펴볼까요?

1. 4살 때 잉크 물을 뚝뚝 흘리며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한 - 아마도 작곡하는 흉내를 낸 - 일화가 전해집니다. 아버지가 “너무 어려운 거 아니냐?”고 물어보자 어린 모차르트가 대답했다지요. “협주곡이니까 어려운 거에요. 잘 연주하려면 열심히 연습해야 해요.” 5살 때 벌써 작곡을 시작한 건 사실입니다. 클라비어를 위한 메뉴엣과 소품 등 단순한 곡이지만, 모차르트 특유의 총기가 느껴지는 곡들이지요.

2. 7살 때 배우지도 않은 바이올린을 연주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레오폴트, 아버지 친구 벤츨씨, 샤흐트너씨와 함께 현악삼중주 앙상블에서 바이올린 파트를 완벽하게 연주한 것입니다. 꼬마 모차르트는 아버지 친구가 연주한 바이올린의 음정이 1/8음 틀린 것을 정확하게 짚어내기도 했습니다.

3. 14살 때, 이탈리아 여행 중이던 모차르트는 로마 시스티나 성당에서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를 한 번 듣고 나와서 악보를 받아 적었습니다. 이 곡은 매우 아름다울 뿐 아니라 복잡하고 어렵기로 정평이 난 아홉 성부의 합창곡이었지요. 당시 교황청은 이 곡의 악보를 성당 바깥으로 가져가는 걸 엄금했는데, 모차르트가 단 한번 듣고 암기했기 때문에 이 금기가 깨졌다고 합니다.

4. 결혼 후 고향 잘츠부르크에 다녀오는 길에 모차르트 부부는 린츠에 들렀습니다. 사람들이 교향곡을 연주해 달라고 간청하자, 교향곡 악보를 갖고 있지 않았던 모차르트는 단 나흘만에 새 교향곡을 작곡해서 린츠의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이 곡이 교향곡 C장조 <린츠> K.425입니다.

5. 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 레지나 스트리나자키가 빈을 방문했을 때 모차르트는 그녀를 위해 바이올린 소나타 Bb장조 K.454를 작곡했는데, 연주 직전까지 피아노 파트를 쓰지 않았습니다. 연주회에 온 황제 요젭 2세가 “피아노 파트 악보는 어디 있냐?”고 묻자 모차르트는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지요. 연주는 물론 완벽했습니다.

모차르트는 놀라운 음악적 감수성과 기억력 뿐 아니라, 언제나 지칠 줄 모르는 창조력을 보여주곤 했지요. 14살 때 이탈리아 여행 중, 모차르트의 숙소 위 · 아래층에 다른 음악가들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아랫층에는 오보에 연주자, 위층에는 성악가가 밤마다 연습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웬만하면 시끄러운 소음에 짜증을 낼 법도 한데, 모차르트는 그 소리를 들으며 온갖 음악적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편지에 썼습니다.

모차르트는 동시대 작곡가들의 곡을 듣고 같은 주제로 더 나은 곡을 작곡하는 장난을 즐겼다고 하지요. 가령,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 빈에 처음 도착한 모차르트를 환영하려고 살리에리가 행진곡을 작곡했는데, 이 주제를 사용해서 훨씬 더 근사한 피가로의 행진곡을 작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차르트는 빈에서 자기보다 훨씬 더 잘 나가던 작곡가 디터스도르프의 교향곡 C장조에서 주제를 따 와서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직>을 작곡했고, 자기와 피아노 실력을 겨룬 당대의 거장 무치오 클레멘티의 소나타 Bb장조의 주제로 오페라 <마술피리>의 서곡을 쓰기도 했습니다.

영화 <아마데우스> 중 살리에리의 행진곡 장면
https://youtu.be/-ciFTP_KRy4

모차르트의 이러한 천재성은 찬탄의 대상이었지만, 보통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존재라는 거부감을 낳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모차르트가 싫다며, 우리네 삶이 고통과 시름으로 가득 차 있는 반면 모차르트는 혼자 잘난 체하며 즐거운 음악을 하고 있으니 얄밉다고 하더군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의견이지만, 모차르트 음악의 본질에 다가서면서 이 편견이 자연스레 증발하여 사라지길 바랄 뿐입니다. 모차르트가 외계인 아니냐는 우스개도 있지만, 그 또한 우리처럼 피와 살로 된 인간임을 인정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의 천재성은 놀랍지만, 우리는 그의 두 가지 인간적인 측면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는 조숙한 천재였지만, 35살 생애 내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며 성장한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 멘델스존은 모차르트를 능가하는 재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멘델스존이 10대에 작곡한 <한여름밤의 꿈> 서곡은 34살 때 작곡한, 같은 제목의 모음곡에 들어있는 곡들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어린 시절의 재능이 평생 정체되어 있었다는 얘기지요. 하지만 모차르트는 해가 바뀔 때마다 더 성숙한 음악을 선보였습니다. 여행하는 곳마다 새로운 음악 조류를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소화했고, 새로운 음악을 창조해 냈습니다. 모차르트가 언제나 왕성하게 노력한 사람이었음을 인정하면, 그 또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모차르트는 자유 없인 살 수 없었고 평생 사랑을 갈구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인간적 특징은 음악에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어린 모차르트는 밤마다 아버지의 침대 옆에서 노래를 불러드리고 입을 맞춘 뒤 잠자리에 들곤 했습니다. 아버지와 다정다감하게 교감했던 어린 모차르트는 죽죽 뻗어나가는 트럼펫의 금속성 음향을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한번은 아버지 친구 샤흐트너*주1가 모차르트의 용기를 시험해 보려고 코 앞에서 트럼펫을 불었는데, 불쌍한 꼬마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기절할 뻔 했다고 합니다. 그는 5살 위 누나 난넬을 좋아했습니다. 누나가 연습하는 피아노 소리에 귀 기울였고, 누나가 연습을 마치면아름다운 3도와 5도 음정을 혼자 쳐 보며 피아노를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누나의 회상에 따르면, 그는 함께 연주하기 전에 늘 “나를 사랑해?” 묻곤 했습니다. 하루는 난넬이 장난기가 발동해서 어린 동생의 물음에 “아니”라고 대답했는데 이 말에 그는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이토록 섬세하고 다정다감한 모차르트의 심성은 35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훗날 <피가로의 결혼>에서 용서와 화해를 노래하고, <돈조반니>에서 “자유 만만세”를 외치고, <마술피리>에서 빛과 평화의 세계를 꿈꾼 모차르트의 음악혼은 이미 어린시절에 잉태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기교만 뛰어난 천재가 아니라, 사랑과 자유의 메신저로 인류에게 봉사했기에 위대한 음악가로 꼽힐 수 있는 것입니다.

음악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 모차르트, 그의 첫 작품은 어떤 곡일까, 궁금증을 자아내는군요. 아버지 레오폴트의 기록에 따르면, 5살 생일을 사흘 앞둔 1761년 1월 24일 밤 9시경, 바겐자일의 스케르초를 연습한 꼬마 모차르트는 처음으로 메뉴엣 하나를 작곡했고, 아버지는 ‘난넬을 위한 노트북’에 이 곡을 적어 넣었습니다. 악보 그리는 일은 아버지가 도와줬지만, 이 메뉴엣은 버젓이 모차르트의 첫 작품 K.1로 기록되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검색어 : Mozart K.1 Klien
▶ http://youtu.be/KK97qrf_Hs8 (피아노 연주 발터 클리언, 클릭하시면 연결됩니다.)

매우 단순한 곡이지만 5살 꼬마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생생히 살아 있지요? 알에서 갓 깨어난 병아리 같기도 합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둘러보는 세상, 모든 게 경이롭게 보이지요. 첫 충격, 첫 사랑…. 모차르트가 태어난 곳, 그가 평생 애증으로 돌아본 고향 잘츠부르크, 이 곳 대성당에서는 요즘도 날마다 정오가 되면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바로 이 메뉴엣 G장조입니다.

메뉴엣 F장조 K.5
▶http://youtu.be/NvHO_y6CG5Y (링크를 클릭하시면 연결됩니다.)

몇 달 뒤 작곡한 메뉴엣 F장조는 첫 곡보다 한결 성숙한 느낌을 줍니다. 특히 후반부, 15마디부터 18마디까지, 왼손이 “솔.솔.파.미.레.도” 하강할 때 오른손이 분산화음을 연주하는 대목이 매혹적이군요. 낮은 음계에서 한 번 연주한 뒤 한 옥타브 높게 또 한 번 연주하지요. 귀를 쫑긋 세운 채 낮은 음계와 높은 음계의 차이를 음미하는 꼬마 모차르트의 모습이 보이지 않나요?

* 주. 모차르트의 어릴 적 일화들은 주로 아버지 친구였던 샤흐트너(1731~1793)와 누나 난넬(1751~1829)의 증언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놀라운 일화들은 과장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불가사의한 천재’의 이미지는 초기의 전기 작가들에 의해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 7살 모차르트가 바이올린을 척척 연주했다는 건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배운 적도 없이 그렇게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적어도 연습은 몇 번 했을 것이며, 기본 자세와 연주법은 당대 최고의 바이올린 교사인 아버지 레오폴트가 가르쳐줬을 것이다.

어릴 적 모차르트의 재능에 대한 증언을 포함, 그의 생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가급적 생략한다. 모차르트에 대한 훌륭한 전기가 국내에 이미 여러 권 번역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음악 애호가들은 제레미 시프먼 <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포노, 임선근 옮김), 피터 게이 <모차르트, 음악은 언제나 찬란한 기쁨이다!>(푸른숲, 정영목 옮김), 두 권만 읽어도 충분할 것이다. 필립 솔레르의 <모차르트 평전>(효형출판, 김남주 옮김)은 빛나는 필체로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묘사한 대목들이 압권이다. 이 책 자체가 훌륭한 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모차르트>(문학동네, 박미애 옮김)는 시대상황에 비추어 모차르트 생애의 중요한 순간들을 조명한 역사적 통찰이 돋보인다.

지휘자 백진현이 쓴 <만들어진 모차르트 신화>(뮤직디스크)가 2014년 출간됐다. 모차르트에 대한 과장된 ‘천재 신화’를 신랄하게 파헤친 책으로, 모차르트의 참모습을 발견하는데 소중한 지침이 될 것이다. 모차르트의 정신세계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쓴 ‘비학문적’ 에세이로는 에릭 엠마누엘 슈미트 <모차르트와 함께 한 내 인생>(문학세계, 김민정 옮김), 졸저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호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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