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적인 지역감정과 극한적 대립이 일상화되는 국회를 확 바꿀 수는 없나? 선거철만 되면 영호남으로 쪼개져 특정 정당만이 특정 지역을 싹쓸이 하는 구조가 아예 뿌리를 내린 형국이다. 국회에서 대소 국사를 놓고 여야가 대치하는 모습은 대화와 타협, 협의 조정이라는 상식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극한적 대립과 막말 속에 여야 그들만의 리그가 진행되고 국민의 구경꾼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국회의원 세비나 처우문제에는 여야가 즉각 ‘우리가 남이가’라며 손을 잡고 마구 상향조정하는 통에 국회의원의 특권은 어마어마하다. 한 해 국회의원 1명에 들어가는 세금이 6억-7억원이 된다는 계산이다.

한국보다 국민소득이 두 배가 많은 국가의 국회의원들이 놀랄 만큼 한국 국회의원이 국민 세금으로 챙기는 특전은 가히 세계 최상급이다. 이 나라 대다수 국민이 비정규직과 빈곤층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국회의 모습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개개 국회의원이 헌법기관으로 신분을 보장받지만 당 대표, 원내대표 등으로 계급구조를 만들어 여의도식 상명하복의 군대식 문화가 깊게 뿌리내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국정원 해킹 문제에 대해 여당은 국정원 출신 의원의 적극적인 국정원 변호 발언만 나올뿐 다른 의원들의 국민 기본권 우려 발언조차 나오지 않는다.

국회의 계급화는 대통령이 국회를 우습게 여기면서 여당 원내총무도 갈아 치우는, 그래서 3권 분립조차 허물어진 듯한 정치가 일상화되고 있다. 군대보다 더 일사불란한 그 모습은 국회의원의 주인인 국민을 한 없이 절망케 한다.

우리 사회에서 변화를 외면하면서 구태를 반복하고 있는 집단의 하나가 바로 국회다. 국회의원은 선거철에만 출마자들이 유권자들에게 굽신거리면서 표를 구걸하지만 일단 선거가 끝나면 슈퍼 갑으로 변신한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출구부터 국회의원의 주인인 유권자를 섬기는 구조가 아니다.

국회의원 선거가 내년으로 다가오면서, 여야가 국회의원 정수 증원과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 시작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시작했지만 국민정서를 고려치 않았거나 정치적 안목이 부족했던 탓인지 본래의 새로운 제도가 갖는 중요한 목적 등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정치적 의제 설정에 실패한 꼴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국민적 지지가 높지 않은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점이 이번에도 확인된 셈이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전제로 의원 정수를 현행보다 대폭 늘리자고 제안했지만 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것으로 초점이 맞춰져 여당이 반격하고 여론조사에서도 역풍을 맞고 있다. 혁신위의 권역별 비례대표제 제안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올해 2월, 현행 300인의 의원정수를 유지하되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2:1로 하도록 하는 내용의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한 바 있기 때문이다. 혁신위는 그러나 중앙선관위와 달리 의원 정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혁신안’을 제기해 당리당략적 의도가 숨어 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혁신위가 고질적인 지역감정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도를 구상했으면서도 이를 앞세우지 못하고 의원수를 늘리는 것을 강조하면서 ‘싸움질이나 하는 국회가 의원수를 늘리겠다?’ ‘의원 특권 챙기는데 여야가 없다’는 식의 광범위한 반대여론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선거구를 몇 개의 권역별로 묶고 득표 수에 따라 비례대표를 나눠 지역주의 타파에 적절한 방식으로 오래전부터 학계에서도 주장해왔었다. 하지만 혁신위가 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것을 앞세우면서 지역감정 청산과 같은 취지가 부각되지 않은 채 국회의원 수 늘리는 것만 강조될 빌미를 준 것이다.

현행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는 당선자가 1명만 나오면서 낙선자를 찍은 표는 중앙당이 선정한 비례대표할당에 활용된다. 이런 제도는 영호남으로 확연히 갈리는 지역구도 속에서 특정 당이 지역 선거구를 싹쓸이하는 결과를 가져와 지역감정이 강화되고 여야 대립 시에 극한적 갈등을 빚는 원인이 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가 내놓은 방안에 대해 의원정수 늘리기라고 규정한 뒤 이는 국민 정서에 반하고 정치 혁신에 역행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여기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경우 새누리당의 원내 과반 의석 붕괴는 물론 여소야대가 전개되는 불리한 정치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는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 연구원의 내부 보고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새누리당은 정치 선진국인 영국과 미국에는 비례대표제가 없다며 차제에 비례대표 자체를 없애자는 폭탄성 의견도 나오고 있다. 즉 각 분야의 전문가를 영입해 국회의원의 부족한 전문성을 보완하자는 비례대표제 도입 당시의 취지가 현실과 괴리감이 있다며 비례대표를 줄이거나 아예 없애 현행 의원 정수 3백명을 지역구로 채워 유지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여야가 의원 정수로 다투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지는 상황에서 국민 10명 가운데 6명 가까이는 선거구 조정 등 제도를 바꿀 때 국회의원 정수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이는 여당이 반길만한 여론 조사 내용으로 야당에게는 큰 타격을 입혔다.

이러자 새정치민주연합 측에서 절충안을 내놓았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야당 간사인 김태년 의원은 "국회의원 정수 300명 내에서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리는 방식을 논의할 수 있다"며 "새누리당이 지역구를 줄이는 데도 부정적이라면 비례대표 54명에 대해서만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하자"고 수정 제안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이 어떤 입장을 보일지 분명치 않지만 새누리당은 오픈프라이머리를 내년 총선에서 전면 시행하겠다면서 새정치민주연합도 따라오라고 공세를 취하고 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부정적 태도를 굳히고 있다.새누리당은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자며 이 제도 도입을 강조하고 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기득권 정치의 연장이고 비용이 많이 든다며 반대하고 있다. 여야의 입장차를 고려할 때 접점을 찾기 어렵다. 오픈프라이머리와 권역별비례대표제를 절충하는 방안의 협의가 가능하다는 의견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여야가 합의해야 할 선거구 재획정 작업의 시한이 오는 10월 13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도 큰 문제다. 여야가 국회의원 선거 방식이나 제도 등에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형국을 고려하면 자칫 현재의 제도가 그대로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회의 집단 이기주의가 대의정치의 원칙을 무시하고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개 꼬리가 몸통을 뒤흔드는 일이 여의도에서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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