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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전체 27건)
우리에게 깃발이며 등대인 동아투위
동아투위 38년 앞에 나는 부끄럽다나는 2010년 6월 7일 MBC 사장 김재철 씨에 의해 해고됐다. 그리고 19대 대선이 박근혜 후보...
관리자  |  2017-04-24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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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동아투위 선배들을 다시 만나랴
동아투위 선배들을 뵈면서, 가끔 시구 하나를 떠올리곤 한다. 김광섭의 짧은 시 〈저녁 돛 마지막 구절이다. “… 어디서 무...
관리자  |  2017-04-16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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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투위 위원들의 생애를 연구하다
이 글은 김세은 교수가 동아투위 위원들을 직접 면담하거나 전화 또는 이메일로 대화해서 들은 내용, 그리고 민사재판부에 제출한 개인기록을...
관리자  |  2017-04-10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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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투위 명예회원으로 함께한 38년
동아투위의 동지들이 박정희 유신독재의 언론통제와 탄압에 맞서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한지가 금년으로 39주년이 되고, 고용된 깡패들에 의해 꼭두새벽에 130 여명이 동아일보사를 강제로 쫓겨나 마침내 동아투위를 결성한...
관리자  |  2017-04-0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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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박정희와 함께 살아야 하나
1979년 10월에 우리는 서울 거여동의 성동구치소에 갇혀 있었다. 여기서 ‘우리’라 함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안종필 위원장과 홍종민 총무, 정연주 위원, 그리고 나를 가리킨다. 우리는 ‘자유언론실천...
관리자  |  2017-03-2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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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 후, 장인의 한약방에서 건재를 썰던 시절
동아 광고탄압 시기에 겪은 감동적 경험1974년 12월 하순 동아일보사에 대해 박정희 정권이 광고탄압을 가하기 시작하자 국민들 이 자유언론실천운동을 격려하고 사원들을 돕기 위한 광고를 다투어 냈다. 1975년 초 어...
관리자  |  2017-03-20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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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그라운드를 빼앗긴 자의 슬픔
나는 1970년 가을에 25살의 나이로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1년 동안 수습기자 생활을 마치고 방송뉴스부로 배치돼 경찰서만 5년 가까이 출입한 사건기자로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활동했다. 동아일보사 기자로 활동했던...
관리자  |  2017-03-1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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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해직과 굴절된 삶
미국 저널리스트 에드가 스노우는 1936년 초 중국국민당 장개석의 공격을 피해 1만2500km에 달하는 고난의 대장정을 하면서 권토중래를 도모하고 있던 중국공산당 지도부를 찾아 모택동을 만났다. 그 때 모택동은 “소...
관리자  |  2017-03-0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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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천(逆天)의 세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가
유년(幼年)에 만난 동아일보내가 동아일보를 처음 만난 것은 국민학교(요즘의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면 단위의 한벽한 농촌이어서 신문 보는 집이 몇 안 되었는데 아버지는 고집스레 동아일보를 구독하고 계셨다. 도회지...
관리자  |  2017-02-27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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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신독재에 이렇게 저항했다
나는 1943년, 경북 경산에서 농사꾼의 3남으로 태어났다. 8남매(4남 4녀)를 먹여 살리랴, 학교 보내랴, 허리가 휘신 아버님께서는 나에게 평소에 “판·검사가 되라”고 당부하셨다.나는 평범하던 청소년이었다. 그러...
관리자  |  2017-02-20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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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엄혹한 시절을 어찌 살아왔던가
나는 1968년 10월 동아일보사에 제11기 수습기자로 입사했다. 처음에는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기뻤으나 그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수습이라고는 하지만 우선 월급이 쥐꼬리여서 생활에 찌들려야 했고 막상 신문사...
관리자  |  2017-02-1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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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언론에 사로잡힌 나의 삶
들어가는 말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인 나의 삶에 관한 이 글을 동아투위의 성립 이전과 이후로 나눠 기술하려 한다. 동아일보 해직 사태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투위원 모두의 삶에 지울 수 없는 고비가 되...
관리자  |  2017-02-0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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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해직이 만들어 준 ‘미스터 스쿠프’
나는 평생 사건 현장을 찾아 생생한 순간을 영상으로 취재한 사진기자였다. 내가 카메라와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뒷동산에 텐트가 몇 개 쳐져 있고 총을 멘 외국 군인들이 있었다. ...
관리자  |  2017-01-3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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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언론운동, 해직, 그 후의 삶
내가 동아일보사에 입사한 것은 1967년 11월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동아일보사에 들어간 걸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나이 서른에 남편을 여의고 어렵게 홀로 키운 아들이 학교도 다 마치기 전에 그 어렵다는 신...
관리자  |  2017-01-2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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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며 싸우며
부끄러웠던 기자생활과 저항의 몸부림1971년 유신헌법의 발효로 독제체제의 폭압통치가 강화되면서 언론의 상황은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중앙정보부 직원이 마치 동아일보 사원이기나 한 것처럼 아침마다 버젓이 편집국에 출근...
관리자  |  2017-01-16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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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투위’ 간판을 내릴 날은 올 것인가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역사에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틀린 경우가 많다. 1975년 발생했던 동아사태는 바로 ...
관리자  |  2017-01-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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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 32년 내내 그리운 얼굴들
민주화라는 꽃을 피우리라고 기대했던 1980년 ‘서울의 봄’이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의 군홧발에 짓밟히자 나는 동아일보사에 복직하겠다는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걸핏하면 집으로 찾아오는 ‘기관원’의 얼굴 보기도...
관리자  |  2017-01-02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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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빨’로 몰리며 살아온 세월
내가 서울 생활에서 사회적 불의에 대해 적으나마 분노를 느끼며 마음과 행동의 방향을 어렴풋이 조정하기 시작한 것은 학생 주도의 4·19 민주혁명이 시작되던 1960년 3월 10일 경이었다. 1959년 봄에 고등학교를...
관리자  |  2016-12-2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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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번역실과 나
종각번역실이 문을 연 것은 1975년 연말에서 이듬해 상반기의 어느 시점일 것이다. 나는 번역실의 창실 멤버는 아니었다. 당시 나는 주부생활사에 취직해서 라는 여성지 창간에 참여하고 있었다.중앙정보부가 취업 방해19...
관리자  |  2016-12-19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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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간방 나그네로 떠돈 37년 세월
“지식인으로 살아가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역사의 길을 걷느냐 현실의 길로 가느냐. 역사의 길에는 고난과 핍박이 있고 현실의 길에는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다면 어느 ...
관리자  |  2016-12-12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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